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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연재

이렇게 지도와 어긋나버린 철도노선

7月「나카사키 신칸센」터널은 자칫하면 대참사

철도건설·운수시설 정비지원 기구(이하 鐵道·運輸機構)2019711, 1025분경 일본 규슈 신칸센(九州新幹線) 니시 규슈(西九州) 루트 건설에 즈음해서 실시한 시굴보링 때 JR규슈(九州) 나가사키 센(長崎線) 우츠츠 가와(現川) ~ 우라카미(浦上) 간에 있는 나가사키(長崎) 터널(길이 6,173m)를 잘못 뚫어 버렸다.   

    

  

터널 안에 나타난 시굴 볼링의 기자재는 때마침 주행 중의 기모메(갈매기의 의미) 16호 열차[나가사키(長崎) 출발, 하카다(博多) ]의 차체에 접촉하여 이 열차는 급정차하였다. 가모메 16호 열차는 현장에 약 1시간 50분 정차했다가 우쓰쓰 가와(現川) 역까지 자력(自力)으로 이동하고 운전은 종결되었다. 접촉의 영향으로 차체에는 큰 상처가 난 가운데 승객과 승무원 158명에 부상자가 나오지 않아 다행이다.

 

지도에서 80m나 틀어졌다.

그 뒤 724, 철도·운수기구는 접촉원인으로 공사용 도면에 표시된 나가사키(長崎) 터널의 위치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도면은 축척 2,500분의 1 또는 5,000분의 1의 나가사키 시(長崎市) 도시 계획도를 바탕으로 작성하엿으며, 나가사키(長崎) 터널위치는 국토 지리원의 지도를 참고한 것이었다. 계획에는 시굴 볼링은 나가사키 터널에서 80m 떨어진 곳에서 진행 준비가 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잘못된 근원으로 지목된 국토 지리원은 이날 국토지리원 지도에서의 지하 구조물의 정밀도를 발표하였다. 터널처럼 항공사진에 찍히지 않는 구조물은 일반적으로 시설 관리자로부터 제공된 자료를 기초로 지도에 반영시켰으므로 정확도가 낮을 우려가 있다고 하는 내용으로 지도라고 하는 것의 성질을 잘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국토 지리원의 담당자라고는 하지만 열차가 운행되고 있는 터널에 들어가 측량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가사키 터널공사는 철도·운수기구의 전신인 일본철도 건설공단의 소관으로 196611, 착수하였으며, 19719월에 준공하였다. 그렇다면 국토 지리원의 지도가 아닌 스스로가 작성한 건설 시의 도면을 참고로 하면 된다고 생각된다. 아마는 준공 시에 나가사키 터널과 함께 그 도면도 함께 국철에 인도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번에는 큰 일이 없었던 게 다행이었다. 철도·운수기구는 향후 다방면에서 도면을 수집한 다음 공사용 도면을 작성한다고 하므로써 두 번 다시 이러한 트러블이 없기를 기원하고 싶다.

그런데, 나가사키 터널과 같이 선로가 실태와는 달라 지도와 다른 위치에 존재하고 있던 케이스도 그대로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지도완성 후에 선로가 이동되었기 때문이다. 사례를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JR 히가시니혼(東日本) 이와고에 니시 센(磐越西線) 가노세(鹿瀨) ~ 츠가와(津川)

 

이와고에 니시 센(磐越西線)의 선로는 후쿠시마(福島) 현 기타카타(喜多方) 시의 야마토(山都) 역에서 니가타(新潟) 현 고센(五泉) 시의 마오로시(馬下) 역까지 67.3km에 걸쳐 아가카와(阿賀川)[후쿠시마(福島) ], 아가노카와(阿賀野川)[니가타(新潟) ]가 열어 준 좁은 습지를 가고 있다.기본적으로 선로 한 쪽은 강, 또 한 쪽이 산비탈이라고 하는 광경이 1시간 30여 분이나 계속된다.


니가타(新潟) 현 아가마치(阿賀町)를 지나 가노세(鹿瀨) 역에서 다음 츠가와(津川) 역 간 3.4km에는 해발 371.9m의 아카사키야마(赤崎山) 비탈이 아슬아슬 하게 선로가 부설되어 있다. 한편, 아카사키 야마 중턱에서 아가노 카와를 쪽 약 1,000m에는 폭 500m의 범위에서 사태가 수시로 일어났으며, 선로도 일부 사태의 영향을 받았다.


구체적으로는 선로는 연간 많게는 2m, 적게도 수십 cm는 아가노 카와 쪽으로 움직였으며, 1913[다이소(大正) 2] 81, 개통하면서부터 1980년 초까지 총 이동량은 50m였다고 한다.


선로의 보수작업은 어떻게 이뤄졌는 가하면 이동이 확인될 때마다 산의 경사면을 허물고, 선로를 산 쪽으로 이동시켰다. 사태가 완만하고, 철로가 강 쪽으로 향해 한꺼번에 밀려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인 데 그나마 다행스러운 대책이다.


더 말하자면 1924[다이소(大正) 13] 311일에는 이 구간의 1개 역 종점인 아라츠(新津) 역 근처 츠가와(津川) ~ 시라사키(白崎)[시라사키(白崎), 현재 미카와(三川)] 간의 사면(斜面)에서 토사 붕괴가 발생하여 때마침 지나던 손님 제401 열차가 토사(土砂)에 올라앉아 선두 기관차, 차위의 우편 차, 객차 2량이 탈선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부딪쳤을 때의 충격으로 기관차는 약 5.5m 아래의 지방도로(, 국도 459)로 전락하여 직원 한 명이 사망하고, 직원 5, 우편직원 3명 등 모두 8명이 부상하였다.


아카사키 야마의 사태는 1981[쇼와(昭和) 56] 들어 건설성(·국토 교통성)의 소관으로 되어 대책이 실시되었다. 그 결과 지금은 이 구간의 선로가 이동할 필요는 없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이동하는 교량

  ※ JR 구슈(九州) 나가사키 센(長崎線)의 롯카쿠가와(六角川) 교량과 시오타가와(塩田川) 교량

나가사키 센 선로는 히젠 야마구치(肥前山口) 역과 히젠 시로이시(肥前白石) 역 간에 일급 하천의 롯카쿠가와를 건너 길이 162.3m의 여섯 롯카쿠가와 교량이 놓였다. 또 히젠 시로이시 역에서 한 역 나가사키 역 근처의 히젠류오(肥前龍王) 역과 히젠 카시마(肥前鹿島) 역 간, 이번에는 이급 하천의 시오타 가와(塩田川)를 건너고 있어 이곳에는 길이 214.2m의 시오타 가와 교량이 놓여졌다.


롯카쿠 가와 교량은 1930[쇼와(昭和) 5]에 가설되어 일부 상부가 호()를 그린 곡현(曲弦) 트러스라고 부르는 비임을 가지고 있다. 한편, 시오타 가와 교량은 1986[쇼와(昭和) 61]에 완성된 비교적 새로운 교량으로써 삼각형 강재(鋼材)를 조합된 워렌 트러스로 불리는 비임이 세 줄로 되어 있다.


두 교량 모두 각지에서 뻔히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어 별로 신기하지 않다. 그러나 국철 및 JR 규슈의 현업 부문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동해 "숨을 쉬는 교량"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동거리는 롯카쿠섯 가와 교량이 11~16mm, 시오타 가와 교량이 5~10mm로써 기본적으로 교량이 강에 대해서 수직방향, , 상류나 하류로 향해서 움직인다. 눈에 보이는 변동폭은 아니지만, 교량의 이동자체가 일반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에 놀란다.


교량은 왜 움직이는 것일까? 그것은 아리아케 카이(有明海)의 간만(干滿)에서 유래했다. 롯카쿠 가와, 시오타 가와와도 아리아케 카이로 흘러드는 강이다.


아리아케 카이의 간만(干滿)의 차이는 최대 6m 가량이나 되며, 밀물(滿潮) 때는 어느 강에도 바닷물이 상당한 거리를 더듬어 간다. 아리아케 해수(海水)가 강을 역류하는 힘은 크다. 덕분에 하구(河口)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있는 시오타 가와 교량은 물론 하구에서 13.5km 떨어진 롯카쿠 가와 교량에도 영향은 및 교각을 상류 쪽으로 밀어낸다. 바닷물이 빠지면 교각도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때문에 하루에 두 번 정도는 교량이 움직이게 된다.“숨쉬는 교량"이라고 할 수 있어 묘하다.


하구(河口)에 걸려 있기 때문에 간만(干滿)의 영향을 받는 교량은 수없이 많지만 롯카쿠 가와 교량이나 시오타 가와(塩田川) 교량처럼 움직이는 예는 별로 없다. 그럼 왜, 나가사키 센(長崎線)의 양쪽 교량이 이동하는가 하면, 걸려져 있는 장소의 지반이 연약하기 때문이다.


두 교량과 연결되고 있는 것은 사가 평야(佐賀平野)에서 아리아케(有明) 점토층으로 불리는 매우 연약한 점토층이 지표에서 깊이 약 20m까지 덮고 있다. 교량만이 아니라 지평선에 깔린 선로도 영향을 받아 나가사키 센(長崎線)에는 열차가 지나갈 때마다 성토가 2~3mm 내려 앉는다고 한다.

 

▣ 최고시속 120km로 통과

롯카쿠 가와 교량은 교각이동의 반복으로 가세해 오랜 반복하여 교량자체도 약간 기울어져 있다.그래도 JR 규슈(九州)의 교량에 이상은 없고, 열차 최고시속 120km로 통과 가능하다.


시오타 가와(塩田川) 교량은 건설시기가 새로운 만큼 튼튼하게 만들어졌으며, 세 줄의 워린 트러스도 교각부에 단단히 결합되었다. 이것이 이목에 나와, 비임 본체와 비임을 지지하는 부분에 금이 생겼다고 한다. 결국 아리아케 해(有明海)의 간만(干滿)에 저항할 것이 아니라 물결에 몸을 맡기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고정된 부재(部材) 중 일부는 해제되었다. 덕분에 지금은 큰 이상은 없고, 열차 최고시속 120km로 통과하고 있다.

 

오사카(大阪) 역

지금까지 든 예는 철도 관계자중에서도 특정부문의 사람들이 아니면 모르는 일뿐일 지도 모른다.그러나 지금부터 소개하는 이야기는 일반 이용자도 눈치채기 쉬울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일찌기 대도시에서는 지하수를 대량으로 끌어올린 결과 지반침하가 발생했다.철도도 큰 영향을 받아 선로나 교량, 역사(驛舍) 등이 가라앉는 사태를 겪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큰 문제로 발전한 것이 JR 니시니혼(西日本)의 오사카(大阪) 역이다.


오사카 역은 국유철도 시대 1936[쇼와(昭和) 11]에 고가화 되어 지상에 세워진 선대(先代)의 역사(驛舍)1941[쇼와(昭和) 16]에는 대체로 완성했다. 건설공사 중에서 관계자를 괴롭히고 있던 것은 오사카 시내에서 현저하게 발생하고 있던 지반침하다. 그 양은 1934[쇼와(昭和) 9]부터 1957[쇼와(昭和) 32]까지 23년 간 많은 곳에서 1.8m에 달했다. 성인 남성이 선 채로 땅바닥에 파묻힐 정도의 높이다.


나쁘게도 지반침하는 균등하게 일어나지 않았다. 같은 것처럼 보이는 고가교도 장소에 의해서 기초가 되는 말뚝구조가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오사카 역 주변의 고가교(구름다리)는 플랫폼 부분이나 당시 도카이도 센(東海道線) 아래로 가던 한큐 전철(阪急電鐵)을 넘는 한큐 다이이치(第一) 과선교(跨線橋), 한큐 제2 과선교 부근[현재의 한큐전철(阪急電鐵)의 우메다(梅田) 역 남쪽]에는 길이 5~6.5m의 콘크리트제의 마찰말뚝, 국도 176호를 넘는 우메다 다이도(梅田大道) 고가도 부근 등에는 길이 30m 안팎의 소나무 말뚝이 각각 뒷받침하고 있다. 마찰말뚝 구간에는 지반침하가 컸지만, 소나무 말뚝 구간에는 먼저 통계로 최대 50cm안팎으로 적었던 것이다.


▣ 지반침하로 짧은 계단설치

덕분에 고가교 위의 선로에는 각 곳에 급경사가 출현하고, 특히 도쿄(東京) 방면에는 증기기관차가 출발하는 위치에 25상구배(上勾配)가 나타나 열차운행에 어려울 정도였다.


또 구배(勾配)를 보정(補正)하려고 궤도 밑에 깐 밸러스트 두께를 만들어 대처하려다 그 양은 두께 1.3m에 달했다. 초고속 주행에 대응하기 위해서 신칸센에는 본선의 밸러스트 도상(道床)은 흙 노반구간에 30cm 이상의 두께로 하게 되어 있다. 오사카 역에서 대량의 밸러스트를 설치했는 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지평에 설치된 역 대합실은 직접 기초, 즉 베타 기초부분이 많아 이곳은 고가교보다 더 침하량이 많았다. 오사카 역과 도쿄 역 등 구름다리 밑에 역 대합실이 설치된 역에는 20단 이상 있는 계단 외 10단 정도의 짧은 계단을 오르내려야 플랫폼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것은 완성했을 때부터 이러한 상태였던 것은 아니다. 지반침하로 인해 기존계단이 닿지 않게 된 결과, 고육지책으로 짧은 계단이 추가된 것이다.


아무튼 지반침하를 방치하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한큐(阪急) 1 과선교(跨線橋), 한큐(阪急) 2 과선교(跨線橋)에는 한큐전철(阪急電鐵)의 전동차가 구름다리에 접촉하는 것 아니냐는 정도로 고가교가 가라앉았다. 그래서 전후(戰後) 곧바로 국철은 응급조치로 일단 두 과선교를, 재클르 사용하여 70cm 상승시켰다.


이어서 채택된 것이 항구조치(恒久措置). 오사카 역은 또 1m 정도는 가라앉는 것으로 예상되었다. 역을 이전시키겠다는 방안까지 나온 가운데 가장 지반침하가 심각한 한큐(阪急) 1 과선교, 한큐 제2 과선교에서 히가시구치(東口)의 여객통로까지 고가교를 재크로 상승시킨 뒤 새롭게 말뚝을 250개나 박았다.


지금 꼽은 대책은 침하를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침하시키기 위한 것이다.따라서 다른 곳에서는 침하는 방치되고, 선로에 구배가 생기면 밸러스트를 두껍게 깔고, 그래도 부족하면 작은 비임을 설치하는 방안이 마련되어 있다.


관계자를 괴롭히는 지반침하는 오사카 시가 지하수를 규제하기도 하였다, 쇼와(昭和) 40년대 들어 수습으로 향한다. 오사카 역의 지반침하는 1975[쇼와(昭和) 50]에는 정지, 이후에는 내려앉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JR 히가시니혼토호쿠 신칸센 우에노역

지반침하는 철도에 있어서 귀찮은 존재이면서 지반침하가 완화되어도 문제가 생겨 버린다. 그 예는 JR 히가시니혼(東日本) 토호쿠 신칸센(東北新幹線)의 우에노(上野) 역에서 볼 수 있다.


토호쿠 신칸센(東北新幹線)의 우에노(上野) 역은 신칸센(新幹線)으로서는 유일한 지하 역으로써 깊이는 30m, 폭은 최대 12m, 연장은 856m이다. 지하 4층에 길이 410m의 플랫폼이 2개가 설치되어 있으며, 선로는 4선이 부설되어 있다. 1985[쇼와(昭和) 60] 314, 개통 당시나 지금도 국내 최대규모를 가진 지하 역이다.


우에노 역의 지하 역 건설공사가 시작된 것은 1978[쇼와(昭和) 53] 3월이다. 당시 도쿄 시내에는 지반침하가 진행되는 지하수가 지표에서 38m 위치에서 지하 역 건설공사에서는 지하수에 영향받지 않았다. 그런데 도쿄 도(東京都)가 지하수를 수렴하여 규제하게 된 영향으로 건설공사 단계에서 지하수 수위가 상승경향으로 변한다.


▣ 지하역이 지하수로 부상

국철은 지하수 수위가 어느 정도까지 상승하면 지하 역이 안정성을 잃는다, , 지표 쪽으로 부상해 버리는 지를 계산하였다. 지표에서 13m 위치, , 깊이 30m의 지하 역 가운데 하부 17m가 지하수에 담글 때까지 문제는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나, 지하 역이 개업하면 지하수 수위는 예상을 넘는 상승세를 나타낸다. 연간 평균 50cm 상승하고, 1990년대에 들어서자 연평균 80cm 페이스는 더 올랐다. 지하 역 주변이 모두 지하수에 잠겨 뜨는 것도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니다.


국철로부터 우에노 역의 지하 역을 계승한 JR 히가시니혼(東日本)은 우선 응급조치를 시행하였다. 질량 모두 37,000톤이나 되는는 쇳덩어리를 플랫폼 지하 4층에 두고, 지하수 수위가 지평선에서 11m까지 되어도 안정성을 잃지 않도록 공사를 1997(헤세이(平成) 9)까지 완성시켰다.


이어서 그랜드 앵커라고 불리는 강한 인장력(引張力)으로 구조물을 받치는 막대를 지하 역에 접속했으며, 다른 한 쪽을 다시 지하를 향해 수직으로 밀어 넣었다. 우에노 역이 지하수에 의해서 떠오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용된 길이 16m의 그랜드 앵커의 수는 603개로 늘어났다. 이 공사는 2005[헤세이(平成) 17] 10월에 완성하고, 지하수 위치가 지표에서 7.5m까지 있으면 역은 부상하지 않는다.


JR 히가시니혼(東日本)에 따르면, 앞으로도 지하수 수위가 올랐을 때를 대비해 새로운 대책을 강구할 예정이라고 한다. 궁극적인 방법으로서는 대량의 지하수를 JR 히가시니혼(東日本)이 수렴하여수돗물로써 일반가정이나 기업에 공급해도 좋을 지도 모른다.


아쓰카(厚賀) ~ 셋푸(節婦) 간 선로

지금까지 오랫동안 기술해 온 것은 히다카 센(博多線)의 아쓰카(厚賀) ~ 셋푸(節婦) 간 선로를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구간을 포함한 히다카 센(博多線)의 무카와(鵡川) ~ 사마니(樣似) 116.km에는 현재 열차운행이 이뤄지지 않아 영업폐지가 농후하다.


이용자가 적은 것이 최대 이유임에는 틀림없다. 덧붙이면 왜 여기까지 몰렸는 지는 아쓰가厚賀~ 셋푸(節婦) 간 선로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덧붙이면 이 구간에는 선로가 이동한 것은 아니다. 선로 주위의 지형이 크게 변화하고, 구체적으로는 해안선이 이동한 것이다


▣ 해안선이 선로까지 다가오다.

아쓰가(厚賀) 역에서 5.5km 앞 오카리베(大狩部) 역을 거쳐 셋푸(節婦) 역까지 7.5km 선로는 거의 전 선(全線)에 걸쳐 해안을 끼고 있다. 태평양의 물결은 잔잔하게 맑은 날이라도 비교적 높다.주행 중 차량에도 가차없이 바닷물이 쏟아질 정도의 상황이었다.

일본 국토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지만 의외로 해안가 구간은 적다. 메이지기(明治期)에 열강 국가들의 군함 공격을 막기 위해 바닷가로 가는 철도부설을 불허한 것은 그 중 하나다. 무엇보다 강력한 염해(塩害)와 파도(波濤)에 의한 침식에 맞서기를 강력히 피했기 때문이다. 바다와 가까운 루트를 선택한 노선이라도 지형이 허락하는 한 내륙을 지나도록 선로가 깔려 있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선로가 깔린 아쓰카() ~ 셋푸(절부) 간을 방문하면 지형의 제약이 별로 없다고 느껴지고 가능하면 좀 더 내륙에 선로가 깔렸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 히다카 센(博多線)의 영업이 휴지된 것은 높은 파도의 피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다이쇼(大正) 초기에 히다쿠쇼쿠(日高拓殖) 철도로써 지금의 히다카 센(博多線)의 선로를 부설한 사람들은 왜 이런 루트를 선택했는가하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다이소기(大正期)에 히다카 센(日高線)을 건설한 관계자도 현상을 보면 놀랄 것임에 틀림없다. 해안이 히다카 센(日高線)의 선로에까지 접근하고 있다라고...


아쓰가(厚賀) ~ 셋푸(節婦) 간에는 1935[쇼와(昭和) 10] 경부터 해안선 침식이 급속히 진행되었다. 침식이 가장 두드러진 곳에는 1946[쇼와(昭和) 21]부터 1959[쇼와(昭和) 34]까지 13년 간 무려 97m나 후퇴했다고 한다. 요컨대 지금은 해안가에 깔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히다카 센(日高線) 선로도 건설 때 내륙을 통하고 있었다.


해안선에 육박하는 심한 침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국철시대 1961[쇼와(昭和) 36]에는 히다카 센(日高線) 기요하다(淸畠) ~ 아쓰가(厚賀) 4.5km 중 약 3km 루트가 변경되어 해안가에서 쪽으로 이설되었다. 이 구간에서 병행하는 국도 235호를 선로가 넘고 있으니 어떻게 이전했는 지가 잘 안다.


루트변경이 아쓰가(厚賀) ~ 셋푸(節婦) 간을 비롯한 해안선 구간에서 모두 실시됐다면 히다카 센(日高線)은 영업폐지가 거론될 가능성이 낮아졌을 지 모른다. 그렇지만, 기요하타(淸畠) ~ 아쓰카(厚賀) 간 루트변경에 대해 당시의 소고 신지(十河 信二) 국철총재는 격노했다고 한다.


선로가 해안선을 따라가는 구간에는 국철이 적극적으로 해안을 보전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데도 국도에 역할을 떠넘기려는 소극적 자세는 없어 보인다. 국철은 미기와 센(水際線)에 근접하는 국철 선로의 유지관리에 대해서 다는 통보를 1961728, 도로 관리자와 공동으로 해안보전에 힘쓰게 되었다.


▣ 해안보존은 JR 홋카이의 역할

공기업체이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국유철도였던 국철시대라면 지금 꼽은 마음가짐이라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민영화되었을 때에는 해안의 보전을 도모해 JR에 모두 강요해도 좋은가라고 하는 논의는 거의 되지않고, 결과적으로 JR 홋카이(北海道)를 괴롭힐 뿐이 되었다.


JR 홋카이도(北海道)는 민영화 이후 히다카 센은 물론, 네무로 센(根室線)에는 온베쓰(音別) ~ 고뢰(古瀨) 9.7km 가운데중 약 3km 구간이나 몬시즈(門靜) ~ 앗케시(厚岸 4.9km중 거의 모든 것에 해안선 보전에 고심하고 있다. 선로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해안을 침식으로부터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든 구간에는 국토유지 관리료라고 하는 명목으로 운임에 가산해도 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 원고를 집필함에 있어서는 무라카미 유타카(村上 溫), 무라타 오사무(村田 修), 요시노 신이치(吉野 伸一), 시마무라 마코토(島村 誠), 세키사키(關雅 樹), 니시다 테츠로(西田 哲郞), 니시마키 세 히로시(西牧 世博), 고가 테츠시(古賀 徹志) 재해로부터 보호·재해로 배움(사단법인 일본철도 시설협회 200612)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고 모든 사례는 책에 게재되었던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추가조사, 취재를 실시했지만 역시 철도관계자를 위한 교과서로 발행된 이 책의 내용이 정확함, 치밀한 분석에는 고개가 숙여진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 資料 :東洋經濟 新報社, 2019.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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