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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톡톡

        어떻게 죽을 것인가?




               소설가,  김 훈




망팔(望八)이 되니까,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벗들한테서

소식(消息)이 오는데, 죽었다는 소식이다.

살아있다는 소식은 오지 않으니까, 소식이 없으면 살아 있는 것이다


죽으면 말길이 끊어져서

죽은 자는 산자에게 죽음의 내용(內容)을 전할 수 없고,

죽은 자는 죽었기 때문에 죽음을 인지(認知) 할 수 없다.

인간은 그저 죽을 뿐, 죽음을 경험(經驗) 할 수는 없다.


화장장(火葬場)에 다녀온 날 저녁마다

삶의 무거움과 죽음의 가벼움을 생각했다

죽음의 저토록 가벼움으로 나는 남은 삶의 하중(荷重)을

버티어 낼 수 있다

뼛가루 한 되 반은 인간 육체(人間肉體)의 마지막 잔해(殘骸)로써

많지도 적지도 않고 적당(適當) 해 보였다.


죽음은

날이 저물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은

자연현상(自然現象)으로 애도(哀悼) 할 만한 사태(事態)가 아니었다

뼛가루를 들여다보니까, 일상생활(日常生活) 하듯이,

세수(洗手)를 하고 면도(面刀)를 하듯이,

그렇게 가볍게 죽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 들이지 말고 죽자

건강보험 재정(財政) 축내지 말고 죽자

주변(周邊) 사람들 힘들게 하지 말고 가자

질척거리지 말고 가자

지저분한 것들을 남기지 말고 가자

빌려온 것 있으면 다 갚고 가자

남은 것 있으면 다 주고 가자

입던 옷 깨끗이 빨아 입고 가자

관(棺)은 중저가(中低價)가 좋겠지

가면서 사람 불러 모으지 말자

빈소(殯所)에서는 고스톱을 금(禁) 한다고 미리 말해두자....


가볍게 죽기 위해서는 미리 정리(整理) 해 놓을 일이 있다

내 작업실(作業室)의 서랍과 수납장(收納帳), 책장을 들여다보았더니

지금까지 지니고 있던 것이 거의 전부가 쓰레기였다

이 쓰레기 더미 속에서 한 생애(生涯)가 지니 갔다

똥을 백자(白磁) 항아리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둔 꼴이었다.


나는 매일 조금씩, 표가 안 나게 이 쓰레기 들을 내다 버린다

드나들 때마다 조금씩 쇼핑백에 넣어서 끌어낸다

책을 버리기는 쉬운데, 헌 신발이나 낡은 등산화를 버리기는 슬프다

뒤축이 닳고 찌그러진 신발은 내 몸뚱이를 싣고

이 세상의 거리를 쏘다닌 나의 분신(分身)이며 동반자(同伴者)이다

헌 신발은 연민(憐憫) 할 수밖에 없는 표정(表情)을 지니고 있다.


뼛가루에 무슨 연민(憐憫)이 있겠는가

유언(遺言)을 하기는 쑥스럽지만, 꼭 해야 한다면

아주 쉽고 일상적(日常的)인 걸로 하고 싶다


- 딸아! 잘 생긴 건달 놈들을 조심해라

- 아들아! 혀를 너무 빨리 놀리지 마라, 정도면 어떨까 싶다.


죽음과 싸워 이기는 것이 의술(醫術)의 목표(目標) 라면

의술(醫術)은 백전백패(百戰百敗) 한다

의술의 목표는 생명(生命)이고 죽음이 아니다

"이국종"처럼,

깨어진 육체(肉體)를 맞추고 꿰매서 살려내는 의사가 있어야 하지만,

충분(充分) 히 다 살고 죽으려는 사람들의 마지막 길을

품위(品位) 있게 인도(引導) 해 주는 의사(醫師)도 있어야 한다.


죽음은

쓰다듬어 맞아들여야지,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對象)이 아니다

다 살았으므로 가야 하는 사람의 마지막 시간(時間)을

파이프를 꽂아서 붙잡아 놓고서 못 가게 하는 의술(醫術)은

무의미(無意味) 하다

가볍게 죽고, 가는 사람을 서늘하게 보내자

단순(單純) 한 장례절차(葬禮節次)에서도 정중(正中) 한 애도(哀悼)를

실현(實現) 할 수 있다

가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의술(醫術)도 모두 가벼움으로 돌아가자.


뼛가루를 들여다보면 다 알 수 있다

이 가벼움으로 삶의 무거움을 버티어 낼 수 있다

결국은 가볍다. 






조선일보 주말섹션,  

<어떻게 죽을 것인가>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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