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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연재

철도차량의 역사(5)

객차

5. 2.  객차


  유럽에는 당초의 객차는 마차(馬車)의 객실을 토대로 발전하였다. 이런데 반해 현대의 객차처럼 보기 대차(bogie 臺車)를 장착한 보기(bogie) 차로 만들겠다는 발상은 1821년도에 이미 영국에서 나왔으며, 이를 실현한 것은 미국이었다.


  이는 급곡선(急曲線)이 많은 미국에서는 고정차축(固定車軸)으로 객차를 오래 끌고 갈 수 없다고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이다. 보기 대차식 객차에 대해서 볼티모어 앤드 오하이오 철도의 로스·와이난즈 씨가 1834년도에 특허를 출원했다.   


  콤파트먼트에서 발상에서 벗어나 중앙에 통로를 배치하고, 그 양쪽에 좌석을 배치하여 현대의 개방 살롱 객차의 원형을 생각해 내어 1840년대 미국에서 일시에 보급했다. 유럽에서는 긴 콤파트먼트를 고집하여 오픈 살롱의 보급은 크게 뒤처지게 되어 1870년대에도 보기(bogie) 대차나 오픈 살롱 차량이 얼마나 진귀한 것이었는 지 아는 예로 프랑스의 드쥐레, 베르누 씨는 자신의 소설『80일간의 세계일주』(1873년) 내에서 미국의 객차(공상 과학적이지 않은 보통객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주: 주인공 피리어스 포그)가 탄 차는 두 줄로 늘어선 네 차륜 위에 올려놓은 긴 승합마차(乘合馬車) 모양이고, 차륜의 원활한 이동성으로 반경이 작은 급곡선도 달릴 수 있었다. 내부는 콤파트먼트로 나뉘어 있지 않고, 차 양쪽으로 중심과 직행으로 설치한 두 줄로 마주 보는 걸상이 나란하게 되어 있으며, 그 사이가 통로로 되어 있어 각 차량에 설비된 화장실 등에 갈 수 있다. 차는 이러한 통로를 따라 서로 연락하고, 여객은 열차 가운데 자유롭게 전망실, 휴게실, 식당, 휴게실 등으로 갈 수 있었다.


  미국의 오픈 살롱식 객차는 요즘 미국에서 널리 보급되어 있는「강증기(川蒸氣)」의 영향을 지적하고 있다. 강증기는 강을 항행(航行)하는 증기선(蒸氣船)으로써 광대하고 도로망이 미발달인 미국에서는 가장 일반적인 교통수단으로 철도보다 먼저 보급되었다. 강증기의 선실(船室)은 오픈 살롱식의 객차와 같이 통로 양측에 좌석이 나란히 혹은 침대(寢臺)가 나란히 구성되어 있었다. 


  일부는 강이 없는 구간을 옆 수계(水系)로 배를 이동시키기 위해 그 구간에만 철도를 깔고 분해한 강증기의 선실(船室)을 화차에 실어 나르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자연스럽게 강증기의 선실(船室)을 본뜬 철도의 객차가 보급되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유럽에 비해 계급차별이 적은 미국에서는 모든 승객이 같은 방을 공유한다는 생각에 저항이 없었다고도 한다.


  미국의 광대한 미개척 평야를 지나는 열차는 대양(大洋)으로 가는 선박에 비유되어 역에서 열차를 내리면 숙박이나 식사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던 유럽과 달리 모든 것을 열차 내에서 자급자족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이 식당 차·침대 차가 미국에서 개발된 한 가지 요인으로 여겨진다.


  침대 차(寢臺車)는 1836년에 이미 펜실베이니아 주(州)에서 운행을 개시하였다. 처음에는 어둡고 좁은 열악한 서비스였으나 조지 풀먼의 손에 의해 대폭 개량되었다. 1865년에 그는 휘황찬란한 파이어니어 호(號)를 보내고, 이는 아이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장송열차(葬送列車)에 이용되어 유명하게 되었다. 1868년도에는 식당 차도 내보내었다.


  풀먼의 설립한 풀먼 사(社)에는 철도회사 대신 침대 차 및 식당 차를 소유하여 요리사나 급사(給仕) 등 관련요원을 고용하고, 각 철도회사의 열차에 연결하여 운행하는 방식에서 침대 차 서비스를 전개하였다. 전성기에는 하룻밤에 4만 명 이용하는 거대한 호텔체인이 되었다.


  객차의 증기난방 시스템의 채용(1887년), 촛불(蠟燭) 조명이었던 것을 오일램프(1873년)로, 핀치가스에 의한 가스등(1891년)으로 갱신, 전 강제차량(鋼製車輛)의 투입(1907년) 등 대형 객차의 쾌적성과 안전성 추구에 큰 족적(足跡)을 남겼다.


  풀먼의 대형 객차들의 영향은 유럽에도 미쳤다. 식당 차가 없던 당시 유럽에선 식사시간에 리프레시 스톱이라는 긴 정차시간을 식당이 있는 한 역을 설정하여 차 밖으로 나가 식사를 하였다. 그러나 독점상태의 역 식당의 서비스는 열악하였으며, 열차의 소요시간 단축의 걸림돌이 되었다. 영국에서는 풀먼에서 도입한 최초의 침대(寢臺)는 1874년, 식당 차는 1879년이었다. 유럽에서는 그 후 국제 침대차 회사[웨건리 사(社)]가 풀먼 사(社)와 비슷한 형태로 침대열차 운행을 하게 되었다.


5. 3. 제동과 연결기


  당초의 철도에는 제대로 된 제동장치(制動裝置)는 없고, 편성 가운데 연결된 완급 차(緩急車)에 인력으로 제동을 체결하는 정도였다. 이는 고속화하는 데 장애로 종종 큰 사고가 발생하였다.


  동력을 이용한 제동의 시초는 스티븐슨 씨가 1833년도에 개발한 증기제동이었다. 제동 실린더에 보일러에서 증기를 보내 작동시켰지만 제동력(制動力)을 제어하기 어려워 편성 전체에 제동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워 기관차용 제동만으로만 이용하였다. 또한 실린더로부터 배기관(排氣管)을 막는 것에 의해 제동을 걸어, 내연기관의 배기제동에 해당하는 기술도 개발되었지만 실린더가 고온이 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또 진행 중 변밸브장치를 후진 쪽으로 전환해 증기의 힘을 제동방향으로 작용시키는 반압제동(反壓制動) 방식도 이용되었다. 이는 밸브장치와 차륜을 남는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진공제동(眞空制動)이 개발될 때까지는 여러 가지로 고안하여 시행하였다.


  보다 본격적인 제동으로써 노스·이스턴 철도의 J·R·스미스 씨가 진공제동(眞空制動)을 1874년도에 개발하였다. 진공펌프로 진공을 만들어 이와 대기압 차이로 제동 실린더를 작동시키는 방식으로써 열차 전체에 제동을 체결하는 관통제동(貫通制動)을 실용화할 수 있게 되었다. 제동력은 크게 향상하였지만 당초 제동관(制動管)이 파손되면 전혀 제동을 걸릴 수 없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어 1878년도에 제임스 그레샴에 의해 제동관에 공기가 들어왔을 때 제동이 걸리도록 하는 자동 진공제동(自動 眞空制動)이 개발되어 해결하였다. 이것은 상당히 광범위하게 사용되던 제동이였다.


  미국의 조지 웨스팅 하우스는 1869년도에 공기압력에 의해서 제동을 체결한 공기제동(空氣制動)을 발명하였다. 이는 아직 초기의 진공제동(眞空制動)과 같이 제동관이 빗나가면 전혀 제동이 먹혀들지 않는 방식이었지만 1872년, 제동관으로 공기가 빠졌을 때 제동이 걸리도록 한 자동 공기제동(自動 空氣制動)의 특허를 취득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진공제동(眞空制動)에는 대기압 차이의 최대 1기압에서 밖에 제동이 걸리지 않지만 자동 공기제동은 보다 높은 압력을 가함으로써 큰 제동력을 얻을 수 있고, 장치도 소형화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었다.


  연결기에 대해서도 당초엔 나사식 연결기가 사용되었으며, 연결작업을 할 때 연결수단이 차량 간에 작업을 해야 했고, 기관차가 과주(過走)해 연결수가 치이고 말거나 연결기에 손을 얹는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또 연결기의 강도에도 제한이 있어 열차의 장대편성 화에 제약이 되었다. 미국의 이라이·쟈니는 연결기끼리 부딪치면 자동적으로 연결되고, 또 해방레버를 조작하는 것만으로 분리하는 것도 있었으며, 자동 연결기를 개발하여 1873년도에 특허를 취득하였다.


  이들 획기적인 발명도 모든 차량에 한꺼번에 도입하지 않으면 효력이 없고, 도입하는 데 매우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에서 당초에는 전혀 보급되지 않았다. 1893년이 되어 철도 안전장치 법에 의해쟈니 자동 연결기와 웨스팅 하우스 자동 공기제동의 채용이 의무화되어 1900년까지 미국에서 운행되는 모든 열차에 자동 연결기와 자동 공기제동이 이용하도록 하여 안전성 향상에 큰 효과를 발휘했다. 이는 미국철도가 현대와 같은 거대한 시스템으로 발전하는 데 기초가 되기도 한다.


  자동 연결기와 자동 공기 제동의 조합은 다른 나라에도 파급되었다. 예를 들면 일본에는 자동 연결기의 교환이 1925년 7월 17일[혼슈(本州)], 7월 20일[규슈(九州)]에 일제히 실시되었다. 또 자동 공기제동도 1930년부터 모든 열차로 이용하게 되어 있다.


  한편 유럽에서는 자동 공기제동이 채용된 것, 각국을 연결하는 국제열차가 복잡하게 운행되며 국가 간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문제가 있어 자동 연결기는 2008년 현재까지 채용되지 않았으며, 당초부터 나사식 연결기가 이용되었다. 또 제동에 대해서도 진공제동(眞空制動)에 집착한 영국은 자동 공기제동으로 이행이 제2차 세계대전 후로 늦어져 아프리카 공화국과 인도ㆍ아르헨티나처럼 현대에 이르기까지 진공제동(眞空制動)을 이용하고 있는 나라도 있다.


6. 내연동차 개발


  독일의 루돌프 디젤은 1892년도에 디젤엔진을 발명하였다. 그가 사망하는 전년 1912년 세계 최초의 디젤엔진 기관차가 독일의 프로이센 방유철도(邦有鐵道)에서 시작되었다. 선박용 1,200마력 엔진을 그대로 실었지만 별로 실용성은 없었다고 한다. 1914년에는 스위스 슬쟈가 200마력 전기식 디젤차량을 개발하였다.


  한편 요즈음 자동차가 보급되고 있는 미국에는 자동차용의 가솔린 엔진을 이용한 가솔린 동차(動車)가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다. 제너럴 일렉트릭이 주로 제작해 가솔린 엔진으로 발전해 그 전력(電力)으로 주행하는 전기식이었다. 또 프랑스의 브갓티도 1930년대에 상당한 가솔린 동차를 판매하였다. 그러나 철도용으로는 연비가 좋은 디젤엔진 쪽이 좋으며, 1920년대 이후에는 주로 디젤동차가 보급되었다.


  또 비행기가 발명되어 사용되면서 프로펠러 동력에 관심이 집중되어 철도차량을 프로펠러로 구동하는 기술연구가 독일에서 이뤄졌다. 600마력 가솔린 엔진에 4매 날개 프로펠러를 취부하여 17.25톤의 차체에 싣고 달렸다.


  이 차량은 레일 위 체펠린 비행선(飛行船)이라는 의미로「시넨체페린 (Schienenzeppelin)」호(號)라고 명명되었다. 1931년 6월 21일, 시운전에는 베를린 ~ 함부르크 간 시험구간 256 km를 98분에 주파하여 평균속도는 154 km/h, 최고속도는 230 km/h를 기록하여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 전 철도의 최고속도 기록이었다. 그러나 다른 차량과 연결하여 달릴 수 없어 비경제적으로 시운전에만 그쳤다.


 
    「Schienenzeppelin」호


  시넨체쓰 제페린에 이어 독일에서는 디젤엔진을 이용한 통상의 차륜구동 고속열차에 나섰다. 410마력의 디젤엔진과 발전기를 탑재하고, 그 전력으로 전동기를 돌려 주행하는 전기식 디젤로써 1933년 5월 15일부터 베를린 ~ 함부르크 간에서 영업운전하였다. 이 열차는「프리겐더·함불거」호(號)의 이름을 지었으며, 270 km의 거리를 2시간 18분에 연결하였다. 평균속도는 124.6 km/h, 최고 속도는 시속 160 km로 영업운전에 사용되는 열차로서는 세계 최고속도를 달성했다.

 

 

          「프리겐더·함불거」호


  고성능으로 승객들의 인기를 끌면서 비용적으로도 증기기관차를 견인하는 열차보다 싼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전역을 잇는 디젤 특급열차 네트워크를 계획하여 증차를 진행되었으며, 그 가운데에는 호이토 제(製) 토크 컨버터를 탑재한 액체식도 있었다. 이 시기에 체코 슬로바키아에는 슬로벤스카 스트레라, 미국에는 파이어니어 제퍼 등 동등한 디젤구동 고속열차가 운행하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제너럴 모터스 산하 일렉트로·모티브 디비전(EMD)이 디젤기관차 개발을 추진하여 1930년대에는 1,000마력 급 엔진을 탑재한 디젤기관차가 각 철도에 점차 보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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