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11 (목)

  • 구름많음동두천 14.8℃
  • 흐림강릉 12.6℃
  • 구름많음서울 14.8℃
  • 구름많음대전 15.3℃
  • 흐림대구 13.9℃
  • 흐림울산 11.4℃
  • 흐림광주 14.6℃
  • 흐림부산 11.8℃
  • 구름많음고창 13.4℃
  • 흐림제주 12.5℃
  • 구름많음강화 12.0℃
  • 구름많음보은 14.5℃
  • 구름많음금산 13.9℃
  • 흐림강진군 13.1℃
  • 흐림경주시 14.0℃
  • 흐림거제 13.2℃
기상청 제공

기획특집/연재

철도차량의 역사(3)

초기의 객차와 화차

4. 초기의 객차와 화차


  탄광용 트로코[광차(鑛車), 광산·토목 공사용의 소형 무개화차]에서 출발한 화차(貨車)는 마차(馬車) 철도용으로 연결 운행할 수 있도록 하거나 간단한 수용제동(手用制動, 손제동) 장착 등으로 개량이 이뤄지면서 증기기관차로 운행하는 본격적인 철도가 등장한 뒤에도 비슷한 화차가 이용되었다.


  그 반면에 객차(客車)의 개발은 지연되어 스톡턴 앤드 다링턴 철도개통 기념식에서 대부분 승객은 석탄 수송용 화차를 타고 있었다. 그러나 1량만 귀빈 손님을 태우기 위해 특별 차량을 조성하여『엑스페리먼트(Experiment) 호(號)』로 명명하였었다. 이것이 세계에서 최초의 객차이다. 장물 차(長物車)같은 평면적인 화차 위에 목조 집을 올린 것이기 때문에 좌우 각각 3개씩 창(窓)이 있고 16명~18명 정도의 승객이 탈 수 있었다. 스프링은 아직 없어 승차감은 극히 나빴다.


  그 후에도 객차의 개발은 뒷전이었으며, 초기 철도에는 마차(馬車)에 쓰이던 차량을 차륜도 그대로 화차에 실어 객차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곧바로 차륜을 철거하고 객실만 화차에 싣는 방식으로 하였다. 이 때문에 각 차실(車室)마다 밖으로 나가는 문이 설치되어 있으며, 차내에서 왕래는 전혀 못했다. 마부가 앉기 위한 객실외 좌석도 그대로 남아 있으며, 차장(車掌)은 이 자리에 앉아 승무하였다.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의 초기 객차


  리버풀 앤드 맨체스터 철도개통 무렵의 객차는 1등 차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마차(馬車)의 객실을 이용한 구조였다. 이에 비해 2등 차는 무개화차(無蓋貨車) 위에 벤치를 나란히 놓고 죄송스럽게도 덮어 비바람을 막아내는 등 지금의 트로코 차량과 흡사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3등 차에는 단순한 화차를 그대로 사용되었으며, 좌석도 마련되지 않았으며, 텐트 정도의 지붕조차 덮지 않았다. 초기 철도에는 신호 시스템의 초기단계부터 사고가 다발했으나 만일 사고 시에는 삼등 차를 타고 있는 손님은 순식간에 차 밖에 내던져져서 사상(死傷)하는 운명에 처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영국에서는 1844년 철도규제 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지붕과 좌석있는 3등 차를 연결한 모든 역에 정차하는 열차를 모든 노선에서 매일 상하행 열차 최저 1개씩 운전하는 것을 철도회사에 대해서 의무화하고 있었다. 또 운임이나 운전속도에 대해서도 일정한 수준에 만족하도록 규제하고 있었다.


  이것에 대한 댓가로 3등 차 수입에 대해서는 세금을 면제하였지만 철도회사는 2등 차의 손님이 3등 차로 이동한다며 불만이었으며, 짜증스러우면서 이 규제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렇게 설정된 지붕과 좌석이 있는 3등차를 연결한 열차는 의회열차(議會列車)로 불렀으며, 당초에는 이른 아침이나 심야(深夜)에 다른 열차가 선로를 사용하지 않는 시간대에 하루 1개 열차만 운행하였지만 역시 철도회사 간의 경쟁으로 이 3등 차는 일반적으로 되었다.


  이와 같이 유럽에서는 마차(馬車) 차체를 기본으로 하여 철도의 객차가 개발되었기 때문에 그 후의 발전에서도 마차(馬車)의 방식(流儀)가 적용되었다. 보다 긴 차체 객차가 개발되더라도 그것은 단지 마차(馬車)의 객실을 앞뒤로 몇 개 연결했을 뿐이지, 차내에서 객실 간 왕래는 고려하지 않았다. 양쪽 문 1조, 앞뒤로 맞은 편에 좌석이 설치되어 각각 3명 정도가 앉게 되었다. 객차의 바닥은 높은 위치에 있고, 플랫폼은 낮아서 큰 단차(段差)가 생겨 차체 옆에는 타는 것을 돕는 스탭이 전장(全長)에 걸쳐서 설치하였다(영국은 예외적으로 승강장(홈)이 객차 문과 동등하다).


  마차(馬車)와 마찬가지로 지붕 위에 짐을 싣었지만 증기기관차로부터 튀는 불똥에 의해서 불타는 사고가 자주 일어났다.


  객실 간 차내에서 연락할 수 없는 객차는 주행 중에 밀실(密室)이 된다고 하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1860년도, 영국에서 1864년도에 잇달아 객실 내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여 종착 역에서 피해자 시신이 발견되는 일로 사회적 불안을 일으켰다.


  여행자는 낯선 타인과 한 방을 사용하는 우려하였으며, 특히 여성 혼자 여행은 젊은 남자와 한 방에 묵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뒤에서 말하는 것처럼 요즘 이미 미국에서는 차 앞에 문이 있는 객실 중앙에 앞뒤 방향으로 통로가 통하고 있고, 그 양쪽에 좌석이 함께 현대적인 객차가 사용되도록 되어 있으며, 이는 유럽에서도 알려졌지만 문화적 문제(19세기 당시 유럽은 미국은 후진국으로 간주되어 저개발국의 기술을 도입하는 것을 싫어하는 관계자가 많았다)인 지 유럽에서 도입은 좀처럼 진척되지 않았다.


  

             초기의 객차


  일단 대책으로써 옆 객실의 모습이 보이는 투시창을 설치하였으며, 1864년도 살인사건의 범인의 이름을 딴 "뮬러의 창문"이라 일컫게 되었다. 스위스 철도로 요즘 객실 사이를 이동할 수 있도록 실내문이 설치된 차량이 있지만 통행할 수 있게 해 객실 내 편온(靜穩)함을 문란케 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윽고 통로를 차량의 한쪽으로 당기고 그 옆에 각 객실이 늘어서 있어 통로와 객실 간에는 출입문으로 단절되어 있는 타입의 컴퍼트먼트가 보급되게 되었다. 유럽에서 미국식 중앙 통로식 객차가 보급된 것은 꽤 나중의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로 유럽의 객실 내의 정온성(靜穩性) 유지에 대한 요구의 강도를 나타내고 있다.


  한편, 화차에 대해서는 당초에는 철도회사가 아니고, 하주(荷主)가 소유하는 사유화차(私有貨車)가 중심이며, 최저한 설비가 있으면 된다는 열악한 차량이 화주에 의해서 구입되어 보수도 최저한인 채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런 열악한 차량사고가 잦아 화차의 표준화가 요구되었으며, 일부 철도회사는 사유화차 매입에 따른 질적향상을 꾀하였다.


  당초에는 모두 목조(木造)였으나 1841년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에서 철제(鐵製) 프레임을 사용하게 되었다. 요즘의 화차는 2축 차 또는 3축 차로써 길이는 5m ~ 6m 정도, 적재중량은 2축 차가 6톤, 3축 차는 9톤이나 되었다. 지붕은 덮개(포장, 휘장판)로 되어 있어 덮개(幌) 마차대(馬車隊)와 같았다고 한다.


배너

포토




철도전문 매거진에 대한 의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