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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연재

철도차량의 역사(2)

전기철도 발명

3. 전기철도 발명


  전력에 의해 철도차량이 달리는 전기철도의 기술은 오래 전부터 실험하고 있으며, 가장 오래된 것이 1834년도에 미국의 데본포트(Devonport)가 주행실험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전지(電池)를 차체에 탑재해 달리게 한 것이지만 초기의 전지(電池)는 진동에 약했기 때문에 실용성이 부족했다. 


  전기철도의 큰 특징인 선로 측에 급전설비를 갖추고 거기서부터 집전하여 전기 차가 주행하는 구조는 1850년 미국에서 홀(Hall)이 처음 실험하였다. 이것은 전지(電池)를 지상에서 급전하였다. 전동기 운전 중에 우연히 발전기를 발견한 것은 1864년이다.


  독일의 베르너 폰 지멘스는 지멘스 할스케(Siemens Halske) 사(社)를 설립하여 1879년, 베를린 무역 박람회장에서 전기 기관차에 의해 3량 객차를 견인하여 300m를 운행하였다. 전압은 직류 150V에서 제3 궤조(軌條)에 의한 급전이었다. 이어서 1881년도에는 베를린 교외의 리히타휄디(Lichterfelde)에서 약 2.5km라고 하는 세계 최초의 실용 전기철도 노선을 개통하였다. 직류 100V 제3 궤조방식(軌條方式)이었다.


  

 베를린 박람회에서 달렸던 전기기관차


  이어서 미국의 프랭크 스프레이그 씨는 스프링의 힘을 이용해서 가선(架線)으로부터 집전하는 트롤리 폴을 1880년도에 발명하였으며, 이를 이용하여 1888년도에 버지니아 주(州) 리치먼드에 직류 500V 시스템을 이용한 리치먼드 유니온 여객철도(Richmond Union Passenger Railway)가 부설하였다. 이는 세계 최초의 성공한 노면전차(路面電車) 시스템으로 전 세계에서 속속 마찬가지의 노면 전차가 부설될 계기가 되었다. 또 스프레이그 씨는 전기철도의 총괄 제어시스템을 발명했으며, 한 기관사의 조작으로 몇 량도 연결된 차량의 전동기를 일제히 제어할 수 있는 전철(電鐵)을 장대편성(長大編成)하여 운전할 수 있게 되었다.


  

       리치먼드 노면전차


  이렇게 하여 전기철도의 역사는 낮은 전압의 직류로 전철화하기 시작하였다. 증기기관차로 운전하여온 런던 지하철은 이 시기에 전철화하였다. 그러나 전압이 낮은 상태로는 도시 내 철도의 레벨에 머물러 도시 간 철도로서의 발전은 어려웠다. 이것으로부터 독일이나 스위스를 중심으로 교류 전철화의 기술개발을 시작하였다.
  우선은 비교적 구조가 간단한 교류 전동기를 사용할 수 있는 3상 교류 전철화 기술을 개발하였으며, 스위스의 브라운 보베리(Brown Boveri) 사(社)(후에 아세아 브라운 보베리)가 3상 교류에 의한 전기기관차를 1899년도에 제작하여 실험을 실시했다. 이어서 독일의 지멘스와 AEG가 합동으로 3상 교류에 의한 고속시험을 하였으며, 1903년 10월 28일, 210.2km/h를 달성하였다.


    
      3상 교류 고속시험 전차


  이것은 아직 비행기를 손에 넣지 않은 인류에게 있어서 이 세상에서 가장 빨리 이동할 수 있는 탈 것이 되었다. 라이트 형제가 라이트 플라이어 호(號)에서 첫 비행을 한 것은 같은 해 12월 17일이지만 속도는 50km/h에 못 미친 것이었다. 3상 교류 때문에 복수의 가선(架線)을 가설해야한다는 문제부터 3상 교류 전철화 기술은 심플론 터널 등 제한된 장소로 이용됐을 뿐 더 높은 전압의 직류 전철화와 단상 교류 전철화로 발전하게 되었다.


  낮은 전압에 머물던 직류 전철화의 전압을 올려 2,400V 전철화를 실현한 것은 1903년, Danplinois 철도이었다. 그것에 이어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 미국에서 2,400V와 3,000V의 전철화 노선이 속속 건설되었다. 이때 약계자 제어(弱界磁制御)와 고속도 차단기(高速度 遮斷器), 카르단 구동방식(驅動方式) 등이 개발되었다. 영국에서도 랭커셔 앤드 요크셔 철도에서 3,600V의 실험을 벌였으나 성공하지 못했으며, 실용화된 것은 1,200V 방식이었다. 또 서던 철도에서 대규모 전철화에는 750V로 비교적 낮은 전압이 사용되었다.


  스위스 엘리콘 사(社)는 1907년, 제밧하 ~ 뱃팅겐 간 단상교류 1,500V, 50Hz의 단상교류 전철화의 기술을 개발했다. 이에 지멘스의 협력을 거쳐서 레겡스돌프 ~ 뱃팅겐 간에서 현재도 이용되고 있는 커티너리 가선(架線)과 팬터그래프의 조합을 사용하게 되었다. 당초에는 상용교류(商用交流)를 그대로 송전하고 전동 발전기에서 직류로 변환하여 구동하였지만 16 2/3Hz의 저주파 교류 전철화로 정류자형(整流子形) 직류전동기를 구동하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석탄급등으로 열차가 대폭 운휴(運休)까지 몰린 스위스에선 국방상 이유도 있고, 전철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되어 스위스 국철은 1945년까지 전 선(全線)을 이 방식으로 전철화하였다. 그밖에 독일,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등에서 이 방식의 전철화가 널리 이용되었다.


  

노스쇼아 선의 일렉트로라이나


  한편, 상용교류(商用交流)를 그대로 이용하는 기술도 개발하여 우선 헝가리의 기술자 칸드·칼만 씨가 주도하여 1923년과 1933년 2차 실험을 하였다. 이는 15,000V 50Hz로 송전하여 기관차 내의 회전 변류기에서 3상 교류로 변환하여 구동하는 것이었지만 잘 안 되었다. 


  1935년도에는 독일의 헬렌 탈 선(線)에서 연구가 실시되었으며, 20,000V 50Hz로 송전하여 차내에는 회전 변류기에서 3상 교류에 의한 교류 전동기를 구동한 것, 정류기(整流器)에 의해 직류 전동기를 구동하는 것, 그대로 정류자식 직류 전동기를 구동하는 것을 비교시험을 하였으나 정류기식이 유망하다고 나타났다. 독일의 상용교류에 의한 전철화 기술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프랑스가 접수하여 그래서 단상 25kV 50Hz 전철화가 실용화 되었다. 이 시기 스콧결선 변압기와 수은 정류기도 개발되었다.


  이렇게 간선망 전철화에 이용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대형 전기기관차가 투입되는 한편 주로 미국에서 노면전차(路面電車)로 발전하고, 도시 간 고속 전기철도로 연결하도록 한 철도망이 19세기 말경부터 발달하여 인터 어번으로 부른다.


  인터 어번에는 정차역 수를 늘려 짧은 편성의 열차를 자주 운전함으로써 기존철도에 맞서려 했다. 미국에는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급속히 쇠퇴하였지만 인터 어번의 기술과 사상(思想)은 일본에 큰 영향을 미쳐 간토(關東)·간사이(關西)를 중심으로 사철(私鐵) 노선망을 설치 중 현대의 전차왕국을 구축한다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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