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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연재

철도차량의 역사(1)

머리말, 증기기관차 발명

                                                      철도차량의 역사(1)


  (서울:레일뉴스)최경수 편집위원 = 철도차량의 역사는 철도차량 발전의 역사에 대해 알아 보고자 한다.

   

   *위키피디아(일본판)에 게재된  "鐵道車輛歷史" 를 5회에 걸쳐 게재할 예정입니다.



1. 첫 머리


  세계 최초로 레일 위를 달리는 차량이 이용된 것은 16세기 독일의 광산에서인 것으로 알려졌다.트로코(鑛車)와 같은 차량이 손수레 또는 가축의 힘으로 화물수송에 이용되고 있었다. 레일과 차륜은 목재(木材)였다.


  이 기술은 영국으로 넘어가 역시 광산에서 수송용으로 이용되어 점차적으로 개량이 이루어졌다. 1738년 컴벌랜드에서 처음 주철(鑄鐵)을 이용한 레일이 발명되었다. 다만, 목재 위에 얇은 쇠를 붙인 것이기 때문에 또 닳기 쉬운 곡선 등 일부 구간에만 이용되었다.


  1750년대가 되면서 모든 구간에서 주철을 붙인 레일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화하였으며, 1767년 콜브륵델 제철소 기사인 리처드 레이놀즈 씨가 목재 기반은 아닌 모든 것을 주철로 레일 생산을 시작했다. 이때 처음 탈선을 막기 위해 플랜지가 사용됐지만 차륜이 아닌 레일 측에 플랜지가 달려 있었다. 레일 양측에 갈퀴가 달려 차륜의 탈락을 막았지만 차륜과 레일이 삐꺽거려서 잘 주행하지 못했으며, 빗물이나 낙엽 등이 틈에 쌓이는 문제도 있었다. 1776년에 벤저민 카 씨가 이를 개선하여 한쪽 침을 제거한 L자 형 레일을 발명했다.


  1789년에 토목기사인 윌리엄 제숍 씨가 레일 윗면은 편평하게 차륜 측에 플랜지를 취부한 현재도 이용되고 있는 형식을 발명했다. 이에 따른 열차의 주행은 안정되고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의 철도는 아직 기계력에 의한 동력이 없었기 때문에 주로 말이 이끄는 마차철도(馬車鐵道)로써 광산의 화물수송 등 극히 일부 수송수단에 머물러 있었다.


2. 증기기관차 발명


  17세기경부터 증기기관에 관한 아이디어가 나오기 시작했으며, 1698년에 영국의 토머스 세이베아리 씨에 의해서 처음 증기기관인 증기압력에 의한 양수기계(揚水機械) 특허가 취득되었다. 또 광산의 배수용으로 역시 영국의 토머스 뉴커먼 씨에 의해 1712년에 처음으로 실용화된 증기기관이 발명되었다.


  이 증기기관은 아직 효율이 나빴기 때문에 개량이 진행되었으며, 제임스 와트 씨에 의해1769년 신 방식의 증기기관이 개발되었다. 이 와트 씨가 개량된 증기기관이 이후 널리 보급하고 산업혁명을 밀고 가는 원동력이었다.


  증기기관을 이용하여 차량을 움직이려고 하는 아이디어는 오래 전부터 있었으며, 프랑스의 니콜라=조제프 퀴뇨가 큐뇨 씨가 포차(砲車)라고 부르는 증기기관으로 달리는 자동차를 1769년도에 만들어 실제로 운행시켰다 .또 와트 씨의 조수이던 윌리엄 머독 씨도 증기 자동차를 개발하엿으며, 1785년도에는 특허를 취득하려고 하는데 이미 성공하여 보수적으로 된 와트 씨에게 방해가 되어 포기하였다.


  머독 씨와도 관계가 있던 기계 기술자 리처드 트레비식 씨는 역시 증기 자동차의 개발에 힘써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후 레일 위를 달리는 기관차 제작에 몰두하여 1호 기는 소용이 되지 않았지만 1804년 2월 21일, 웰즈의 페나데란(Pen-y-deren)에서 2호 기의 주행시험에 성공하였다. 이것이 세계에서 최초로 증기기관차라고 여겨지고 있다. 실린더는 수평으로 두고 연결봉에 의해 큰 플라이 휠을 통해 2축 차륜을 구동하였다.


   당시의 기술적인 제약에 의한 실린더는 1개밖에 탑재하지 못하고 크랭크의 사점(死點)에서 기관차가 멈추어 버리면 인력에 의한 사점(死點)을 지나칠 때까지 기관차를 이동시키지 않으면 다시 발진하지 못했다. 트레비식 씨는 이미 2개 실린더의 위상(位相)을 90도 늦춤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디어를 고안하여 특허도 취득했다. 그러나 레일 강도부족과 기계공작 정밀도의 문제 등으로 아직 증기기관차를 실용화하지 못했다.


  1812년에 존 블랜 수프 씨가 설계한 마슈 머레이(Matthew Murray) 씨가 제조한「사라망카(Salamanca) 호(號)」에는 레일과 차륜이 슬립한 것을 트레비식 씨의 실패 원인이라고 생각되어 레일에 칼 자국을 달고 톱니바퀴를 맞물리고 전진하는 래크식 철도가 되었다. 실린더는 수직으로 세워졌으며, 또 2개 실린더에 의해 사점(死點)의 문제를 해결한 최초의 기관차였다. 90톤 화차를 견인하여 4마일로 주행하였으며, 또 래크 레일로 통상 철도에는 등판(登坂)하기 어려운 50‰의 구배(勾配)도 15톤을 견인하여 오를 수 있었다. 이 기관차는 4량 제조된 1835년까지 실용적으로 이용되었다.

 

     

             Salamanca 호


  윌리엄 해들리 씨는 추가실험을 통해 당초 트레비식 기관차처럼 치차(齒車)가 없는 접착운전(接着運轉)으로도 정상 주행에는 충분하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1813년도에 그는「퍼핑 빌리(Puffing Billy) 호(號)」를 제작하여 달렸다.「살라망카 호(號)」에는 전후에 2개 나란히 있는 실린더는「퍼핑 빌리 호(號)」에는 좌우에 2개 나란히 있고, 하부의 크랭크를 구동하였다. 이 형식은 보기가 메뚜기와 흡사한 데서「그라스 호퍼(grasshopper) 형(型)」으로 불렀으며, 초기 미국의 기관차로 많이 보였다.


  일반적으로 증기기관차를 실용화한 것으로 알려진 것은 조지 스티븐슨 씨이며, 자주 증기기관차 자체의 발명자로 오해받고 있다. 북 잉글랜드의 탄광(炭鑛)에서 일하던 그는 와트 증기기관의 조작과 개량을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증기기관차에 손을 대게 되었다.


  킬링워스(Killingworth) 탄광에서의 실험에서는 피스톤의 움직임을 치차(齒車, 톱니바퀴)로 차륜에 전달하는 기구는 약하다는 것을 알고 커넥팅 로드(連結棒)에서 직접 차륜을 구동하는 기구를 발명하였다. 또 복수의 동륜(動輪)을 연결한 커플링 로드도 시험했지만 당시의 기술로서는 정밀도 부족으로 실패해 체인 구동으로 하였다. 커넥팅 로드(連結棒)에서 직접 차륜을 구동하는 방식은 이후 증기기관차 시대의 종말까지 거의 모든 기관차에서 계속된 평범한 방식으로 되었다.


  스티븐슨 씨는 아들 로버트 스티븐슨 씨와 기타 관계자들과 함께 1823년도에는 세계 최초의 기관차 제조회사, 로버트 스티븐슨 앤 컴퍼니를 설립하였다. 이것은, 증기기관차를 이용한 본격적인 철도가 개통하기 전의 일이다.


  스티븐슨 씨는 여러 탄광에서 증기기관차를 달리게 하여 유명하게 되었다. 이로써 세계 최초의 증기기관차를 이용한 공공철도(公共鐵道)인 스톡턴 앤드 다링턴 철도가 1825년도에 그의 손에 의해 개통하였다. 이 철도는 주철제(鑄鐵製) 레일로 바꾸어 연철(鍊鐵) 레일이 이용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레일의 강도개선으로 증기기관차는 실용화되었다.


  그러나 스톡턴 앤 다링턴 철도는 아직도 마차철도(馬車鐵道) 시대의 방식에 의해 운행되었으며, 열차 다이어가 정해지지 않고 적당하게 운행하였다. 열차를 운행하고 싶은 다른 사람들에게 선로를 빌려 주는 일도 행해져 운하(運河)에 가까운 형태였다. 더욱이 처음에는 화물열차에만 증기기관차에 의한 운행하였으며, 여객열차는 말(馬)에 의해 견인하였다. 이때 투입된 기관차인『로코 모션(Locomotion) 호(號)』는 처음 캬프링 로드를 실용화한 복수 차륜을 로드로 연결하여 구동하는 방식이었다.


  더욱이 스티븐슨 씨는 증기기관차의 개량을 추진하여 스프링을 모든 차륜에 취부하여 동요(動搖)를 완충하도록 한 기관차「엑스페리먼트(Experiment) 호(號)」를 1827년도에 배출하였다. 스프링에 의한 차체의 상하(上下)에 수직으로 설치한 실린더는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수평으로 구동하는 방식으로 되돌렸다. 그리고 1828년도에는 초보적이면서 밸브장치의 구동을 연구하여 컷오프의 개념을 접목시킨「랭커셔 위치(Lancashire Witch) 호(號)」를 배출하였다.


   

               로켓트 호


  이어서 스티븐슨 씨는 중부 잉글랜드 무역항 리버풀과 공업도시 맨체스터를 잇는 리버풀 앤드 맨체스터 철도를 건설하였다.


  1829년 10월, 이 철도에서 증기기관차를 채용할 지 정치식 증기기관에 의한 케이블 견인을 채용할 지를 결정하기 위해 레인 힐 트레일이라고 하는 기관차 대회가 열려 스티븐슨 씨가 개발한「로켓 호(號)」가 우승하였다.


  이 기관차는 또 프랑스 마크 세건 씨가 고안한 것으로 알려진 연관(煙管)을 다관식(多管式)으로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출력이 크게 강화되었다. 이에 따라 리버풀 앤드 맨체스터 철도에는 증기기관차의 채용이 결정되어 여객열차도 증기기관차가 견인하는 첫 번째 철도가 1830년도에 개통되었다. 운행관리 및 신호 보안기술도 개선되어 사실상 실용적인 철도로 산업혁명을 이끌어 나가게 되었다.*



  

자료 : 위키피디아, 鐵道車輛歷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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