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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표사유피인사유명[豹死留皮人死留名]

표사유피인사유명[] : 표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뜻으로, 사람은 그 삶이 헛되지 않으면 방명()은 길이 남는다는 말.

 *이 말은 '호사유피인사유명()', '인재명호재피()'와 같은 뜻이다.

 (豹 : 표범 표, : 죽을 사, : 머무를 류, : 가죽 피, : 사람 인,  : 죽을 사, : 머무를 류, : 이름 명)


[유래] 오대사()》 〈왕언장전()〉에 나오는 말이다.

왕언장()은 병졸에서 시작하여 후량()의 태조()인 주전충()의 장군이 된 용장이다. 그는 하나의 무게가 백 근이나 되는 한 쌍의 철창을 들고 늘 주전충의 곁을 따라다녔다. 전투시 언제나 쇠창을 옆에 끼고 적진을 누벼 사람들은 그를 왕철창()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주전충이 즉위 6년 만에 아들에게 피살되고 그 아들은 다시 동생에게 피살되는 등 양나라(후량)에 내분이 일어나자, 진왕() 이존욱(:장종)은 황제가 되어 국호를 당()이라 하고 양나라와 대치하게 되었다. 이때 왕언장은 초토사(使)가 되어 싸우다가 패해 일시 파면되었다가 당나라 황제가 대군을 이끌고 공격해오자 다시 등용되었다. 그는 양나라가 멸망할 때 겨우 500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수도를 지키다가 상처를 입고 포로가 되었다.

당제()는 그의 무용을 아껴 자신의 부하가 되어달라고 했다. 그러자 왕언장은 '아침에는 양나라를, 저녁에는 당나라를 섬긴다면 살아서 무슨 면목으로 세상 사람들을 대하겠느냐'며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했다. 이때 그의 나이 61세였고, 그가 죽은 후 양나라는 곧 멸망하였다. 왕언장은 생전에 글을 배우지 못해 거의 문자를 알지 못했으나 언제나 즐겨 인용하는 이언()이 있었다. 바로 '표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뜻의 '표사유피인사유명'이었다. 그는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던 이 말처럼 구차히 살아 남지 않고 명예로운 죽음을 택해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남겼다.


자료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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