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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 칼럼/발언대

지하철 임산부석 문제 어떻게 풀어야 하나?

임산부석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는 이유 및 향후 방안

                                            한우진(레일뉴스 칼럼니스트, 미래철도DB 운영자, 교통평론가)

 

                         서울지하철 8호선 전동차 내부의 임산부 배려석(사진 한우진)

 

지하철의 서비스 수준은 지하철 운영사가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다. 실제로 정기적으로 외부기관으로부터 서비스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학교 성적표처럼 점수로 공개되며, 국내 지하철 회사들끼리도 그 성적이 비교된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 지하철 회사들은 자사의 서비스 수준을 높이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서비스 개선에서 지하철 회사에게 가장 난해한 것은, 바로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인 승객들 사이에서 결정되는 서비스 수준일 것이다. 예를 들어 차량을 최신으로 바꾸고, 시설을 개선하면 서비스 수준을 높일 수 있다. 이는 공급자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승객들끼리의 다툼과 반목에서 생기는 서비스 수준의 하락에는 손대기가 어렵다. 예컨대 승객들의 무질서, 타인에게 무례한 행동들, 지하철 안에서 벌어지는 계층간 세대간 갈등은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들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그리고 이는 그 지하철의 서비스 수준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공급자 입장에서 이는 다루기가 어려운 문제다. 애들도 아니고 학교도 아닌데 가르치듯이 할 수도 없고, 그저 시민의식이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캠페인을 벌이는 게 고작이다. 불법 행위라면 어느 정도 단속이라도 하겠지만, 에티켓의 문제라면 단속도 불가능하다.

 

이런 문제 중에서도 요즘 가장 부각되는 것이 바로 지하철 임산부석 문제다.

    

 

                                          인구보건복지회협회 임산부 배려수칙 엠블럼 


여성이 임신을 하게 되면 신체적 정신적으로 많은 변화가 나타난다.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여성들은 임신 기간 중 몸이 무거워지고 체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평소에 간단했던 일들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특히 임신 기간 중 몸관리를 잘못할 경우 유산이라는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따라서 임신부들은 일상생활에서 평소보다 더 많은 안정을 취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승객이 가득한 지하철은 이것이 불가능한 공간이다. 인파에 떠밀려 제 한 몸 가누기도 힘든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임신부에게 착석은 매우 중요한 보호 방법이 된다.

 

기존에 임신부들은 지하철 객실에 빈 좌석이 없을 경우 가장자리에 마련된 노약자석을 이용하였다. 그런데 고령화가 진행되어 노인 비중이 늘어나다보니 노약자석에 앉기 힘들다는 반응이 늘어났다. 특히 노약자석에 앉았다가 노인들에게 봉변을 당하거나 심지어 폭행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올라오자, 임산부가 더욱 더 노약자석을 기피하게 되었다. 노약자석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초기의 임산부 배려석 모습(사진 한우진)

 

그래서 지난 2013년 지하철 객실에 임산부석이 등장하였다. 노약자석과는 달리, 정 가운데 7인석 중 가장자리 2개를 임산부석으로 배정하였다. 처음에는 머리 뒤에 스티커를 붙이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바닥에도 대형 스티커를 부착하고 아예 시트 색깔을 분홍색으로 하여 구분을 더 확실하게 하였다.

 

하지만 임산부석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임신부들은 착석을 하기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로 지하철 운영사가 임산부석을 맨 처음 도입했을 때, 무조건 비워두어야 하는 것인지, 일반인이 앉았다가 임산부가 오면 양보하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하지 않고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임산부 배려석 양보로 시작했는데 양보받기 힘들다는 말이 나오자, 2015년부터 임산부석 비워두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잘 지켜지지가 않고 있다. 굳이 비워두어야 하는가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안 되고 있는 것이다.


 

                                          인구보건복지회협회 임산부 배려수칙  


아무리 캠페인이라고는 해도 자꾸 위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에 대한 반감도 있었을 것이다. 좌측통행을 하다가 우측통행으로 바꾼 것, 처음에는 한줄서기를 권장하다가, 두줄서기 캠페인을 벌이다가, 지금은 두줄서기 캠페인을 그만 둔 것 등 지하철 운영사의 갈지()자 행보도 승객 입장에서는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이렇게 지하철 회사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랬다 저랬다 하면 승객들이 지하철 회사를 따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둘째로 임산부석에 대한 일반 승객의 입장도 제각각이다. 임산부석은 비워두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정작 임산부가 아닌 사람이 그 자리에 냉큼 앉는 것을 보면, 왠지 자기만 손해 봤다는 생각이 든다. 비워두겠다는 평소의 다짐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임산부가 오면 일어나겠다는 생각으로 앉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 임산부가 왔다고 해서 바로 알아차리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밖으로 티가 잘 안 나는 초기 임산부는 더욱 그러하다. 더구나 임신부가 아니고 살이 찐 여성에게 괜히 앉으라고 권했다가 민망해지는 상황도 걱정되긴 마찬가지다.

 

임산부고 뭐고 상관없이 무조건 앉겠다는 사람도 있다. 애초에 임산부석의 취지에 공감을 안하는 경우다. 민주주의 사회인만큼 사람의 생각은 다양할 수 있다. 다만 승객들의 생각을 애초에 하나로 모으지도 못하면서 임산부석을 운영하는 지하철 회사에는 아쉬움이 생긴다.

 

 

일부에서는 임산부들이 임산부석에 앉은 사람에게 자리 양보를 요청하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웬만큼 성격이 꼬인 사람이 아니고서는, 임산부 배지까지 달고 있는 임산부가 임산부석의 자리 양보를 요청하는데 거절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인구보건복지회협회 임산부 배려가방고리  


하지만 임신부들은 두려움을 호소한다. 그런 말을 했다가 봉변을 당하거나 폭행을 당할까봐 두렵다는 것이다. 꼭 봉변까지는 아니더라도 임산부석에 앉아있던 사람이 다리를 다쳤다거나 하는 이유로 임산부석 자리 양보의 거절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문제는 임산부 커뮤니티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는데, 적극적으로 자리 양보 요구를 하자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그렇게 양보를 요청하는 것 자체가 강요인 것 같아서 싫다는 사람들도 있다. 자리 양보 요청을 통해 착석을 하면 가장 이익을 보는게 임산부인데, 임산부 스스로가 양보 요청에 대해 거부감을 갖기도 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1번 링크는 제목 클릭, 2번 링크는 가입 필요)

32...이젠 임산부석인데 앉아도 되냐고 요구하게 되었어요.

(1) https://goo.gl/PTsw4E

(2) https://cafe.naver.com/imsanbu/20503250

임산부 배려와 호의를 권리로 착각하지 않게 자정작용이 필요한 듯

(1) https://goo.gl/rYMKqV

(2) https://cafe.naver.com/imsanbu/31648536

 

 

거절에 대한 공포는 인간이라면 당연한 것이다. 특히 임신부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약해져 있기 때문에 이러한 공포가 더 클 것임을 이해한다. 하지만 사회라는 것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지 않으면 누구도 그 권리를 찾아주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언제나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꼭 우리 사회에 문제가 있다기보다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다.

 

 

지하철 운영사도 승객들 간의 문제라고 방치하지 말고 좀 더 적극적이고 현실적으로 나섰으면 좋겠다. 이런 문제를 방치하면 시설과 차량을 아무리 새것으로 바꾸어도 지하철 서비스 수준이 오르지 않는다.

 

일단 임산부들이 노약자석에서 당하는 봉변부터 막아주면 좋겠다. 노약자석은 교통약자석으로서 분명히 임산부도 앉을 수 있는 자리다. 그런데 임산부가 이 자리에 앉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노약자석 주변에 지금보다 훨씬 크고 명확하게 임산부도 앉을 수 있다는 것을 활자로 안내해야 한다. 노인들은 시력이 약해 작은 글자는 알아보지 못한다. 완곡한 표현도 사치다. 피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으로 기술하도록 한다.

 

또한 커뮤니티 등에서는 노인들이 아직도 임산부 배지 자체를 모른다는 증언도 많이 들리고 있다. 지하철 회사는 지금처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임산부석 캠페인을 벌이기보다는, 노약자석의 의미, 임산부 배지의 정보 등에 대해 노인 승객들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안내하고 홍보를 할 필요가 있다. 지하철역 근처에 노인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나 지하철 노약자석 자체가 주요 홍보 대상 지점이다.

 

유독 노약자석 주변에서 다툼이 자주 발생하는 점을 고려하여 이곳에 CCTV설치도 고려한다. 실제로 다툼이 생겼는데도 채증을 못해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CCTV를 설치하면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고 가해자를 압박하는 효과가 생긴다. 말싸움부터 시작되는 점을 고려하면 CCTV에 녹음 기능까지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임산부석 안내체계도 바꾸어야 한다. 지금 쓰고 있는 내일의 주인공을 맞이하는 핑크카펫은 너무 시()적인 표현이다. ‘임산부가 올 때까지 자리를 비워두십시오같이 명확한 표현이 적절하다. 또한 외국어 안내가 없다. 외국인 관광객은 임산부석인지 알기 어렵다. 영어와 주요 외국어로 임산부석임을 확실히 하도록 한다.

    

                                              부산교통공사 임산부석 핑크라이트 

 

필자는 지난 15년 이상 지하철 통근을 해오면서 지하철 객실 내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계속 고민해왔다. 그리고 현 시점에서 임산부석에 대한 본인의 개인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다

 

지하철 승객들은 임산부석을 비워두도록 한다. 임산부가 오면 그때 일어나겠다고 생각하지 말자. 자신은 그렇게 하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하지 않는다면 결국 임산부는 임산부석에 앉지 못하게 된다. 애초에 비워두는 것을 사회적 약속으로 만들어야, 멋대로 앉는 사람을 방지할 수 있다. 노약자석이 이런 과정을 거쳤다.

 

임산부석에 임산부가 아닌 게 명백한 승객이 앉아있을 경우, 임산부 배지를 착용한 임산부는 최대한 정중하게 자리 양보를 요청한다. 비록 거절을 당하고, 봉변을 당할까봐 두렵더라도 꾸준히 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인 임산부들의 두려움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아예 요청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다른 임산부들까지 더욱 더 양보를 받기 어려워진다. 잔인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라는 말을 기억해야 한다.

 

지하철 운영사는 보다 적극적으로 임산부 보호에 나서야 한다. 임산부들은 두려움 때문에 임산부석 자리 양보 요청을 하지도 못하고 있다. 지하철 운영사가 임산부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어야 한다. 승무원 안내방송은 사실상 효과가 없으니, 객실내 상시 순찰하는 지하철 보안관이 임산부 대신 임산부석 승객에게 자리 양보를 요청할 수도 있다. 비록 일일 이벤트이더라도 사장(社長)이 직접 나서는 것도 홍보효과가 클 것이다. 대전지하철과 공항철도에 시행한 임산부석 인형 비치도 넛지(nudge)를 이용한 좋은 정책이다. 인형 비용이 든다면 기부를 받아보자. 인형에 광고를 유치할 수도 있다.

 

 

임산부석 때문에 갈등이 지속되는 것은 사회적으로 너무나 소모적인 일이다. 저출산 시대에 임산부를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도 하다.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좀 더 관심을 가져, 이문제가 좋은 방향으로 풀려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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