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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와 문학] 사평역에서

 

    <구둔역>


철도와 역사(驛舍) 독특한 공간이다. 누군가에겐 출발지가 되지만 누군가에겐 목적지가 된다. 또 어떤 누군가에겐 무언가를 기다리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는 열차는 진취적이며 진보적인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정해진 길만을 다닌다는 점에선 한 자리에서 계속 맴도는 모습을 가지기도 한다. , 철도는 산업화 시대의 문을 연 운송수단으로써 산업화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이미지이기도 하다.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철도와 역사는 시와 소설뿐만 아니라 그림과 영화 등에 모티프로 작용했다.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더라도 철도가 가지는 의미 때문에 그것이 등장하는 다양한 작품들이 존재한다.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는 눈 오는 대합실을 그려낸 시다. <사평역에서>사평역은 실존하는 역은 아니다. 현재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에 2009년에 개업한 사평역이 있기는 하지만, 시가 발표된 때는 1981년이기 때문에 지금의 사평역은 시에 등장하는 사평역의 배경이 아니다. 시의 실제 공간적 배경은 경전선 남광주역과 남도 회진포구이다. 1983년에 이 시에 영향을 받은 단편소설 <사평역>이 나오기도 했다.

 

1980년대는 1970년대의 정치적 상황과 산업화라는 사회적 변화가 이어진 시대였다. 광주 민주항쟁까지 더해져 현대사에서 가장 뜨거웠던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광주 출신의 곽재구는 그런 주변 상황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광주민주화운동의 영향을 받은 무크지 오월시의 동인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1980년대의 시들은 민중적 성격을 가짐과 동시에 시적 형식면에서 많은 변화가 있던 시기였다. 시인들은 당대를 비판하면서 전통적인 서정 역시 탈피하고자 하였고, 그 과정에서 파격이라고 할만한 형태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실을 바라보고 비판하면서도 서정을 이어가려는 집단도 있었다. ‘오월시가 바로 그런 동인들의 모임이었고 곽재구와 그의 시 사평역에서는 그런 민중적 서정시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다. 사평역에서가 리얼리즘을 서정적으로 그려냄에 있어서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 이유도 그러한 이유이다.

 

모든 시들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시들은 당대의 시대상을 담고 있다. 곽재구도 <사평역에서>1980년대의 시대상을 서정적으로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시가 지금에도 읽히는 것은 시대를 떠나 그 서정성이 우리의 가슴에 와닿기 때문일 것이다. 송이눈이 내리는 겨울날, 난롯불에 의지하고 있는 적막한 대합실의 모습은 떠올리기 그리 어렵지 않다. 시인이 민중의 고달픈 삶에 깊이 공감하며 느끼는 슬픔과,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며 전하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지금의 우리도 느낄 수 있다.


시의 메시지가 시대를 넘어 고달픈 현대인에게까지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곽재구의 시는 1980년 당시 사회를 그리고 있지만, 지금 우리가 그 시를 우리의 이야기로 읽지 못할 것도 없다.

 

요즘의 기차역들은 역사 전체가 대합실이라 해도 될 만큼 크고 널찍하기 때문에 시 속의 분위기와는 멀지만, 우리는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당시의 대합실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또한 아직 옛 대합실의 모습을 느껴볼 수 있는 공간들이 남겨져있기 때문에 직접 찾아가볼 수도 있다. 바로 간이역이다.

 

남아있는 간이역들은 열차가 전혀 다니지 않거나 하루에 한두번 정차하기 때문에 역사로서의 기능은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간이역의 대합실도 대합실로서의 제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그렇게 사라질뻔 했던 간이역들을 각 시·도에서는 관광상품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런 노력 끝에 현재, 간이역들은 옛 분위기는 간직한 채 새로운 모습으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구둔역과 화본역은 매체를 통해 알려진 유명한 간이역들이다. 구둔역은 영화 <건축학개론>에 나오면서 유명세를 탔고, 화본역은 방송 <12>에 소개되면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게 됐다. 군산의 임피역처럼 역사의 역사(歷史)를 간직하고 있는 개성있는 역도 있다. 그렇게 간이역들은 저마다의 예전 모습과 함께 현대적인 개성까지 갖추어 사람들의 새로운 쉼터가 되어주고 있다.

 

<사평역에서>의 대합실은 기다림의 공간이다. 시 속에서 사람들이 열차를 기다렸다면 이젠 역사가 사람들을 기다린다. , 이제 사람들은 대합실에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휴식을 취한다. 많이 달라진 것 같은 모습이지만 아주 다르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머무르는 공간이라는 공통점이 철로처럼 <사평역에서>와 현재를 연결해주고 있다. 따뜻한 시와 쉼터라는 공간이 공명하면서 더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간이역에 들를 일이 생긴다면 그곳에서 <사평역에서>를 읽어보자. 그리고 찬찬히 둘러보자. 무언가가 가슴에 느껴질 것이다.


글 : 황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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