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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 칼럼/발언대

유연한 철도 운임제의 필요성

                                                  한우진(레일뉴스 칼럼니스트, 미래철도DB 운영자, 교통평론가)


 


도로 시설이 형편없던 오래 전에는 전국적으로 볼 때 사실상 철도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또한 도시화가 지금만큼 심하지 않았던 만큼 철도의 영향력이 전국 곳곳으로 퍼져 있었다. 지방의 작은 역들에도 상당한 이용객이 있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철도의 수송분담률과 사회적 영향력이 컸던 시절에는 동일한 서비스를 전국에 폭넓게 제공하는 것이 중요했다. 운임체계에서 이런 점을 살펴볼 수 있다. 여객철도의 운임은 기본적으로 임률로 정해진다. 승객을 1km 수송해주는데 일정금액을 받는 것이다. 이를 임률이라고 한다. 임률의 단위는 원/km이다.

 

하지만 철도 조직과 시설을 유지하는데 승객의 이용거리와 관계없이 기본적인 비용은 필요하기 때문에 최저운임제도를 쓰고 있다. 즉 철도를 아무리 짧게 타더라도 몇 km이상은 탔다고 가정하고 그 운임을 받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무궁화호의 임률은 64.78/km이다. 그리고 최저이용거리는 40km이다. 그래서 서울에서 영등포까지는 9.1km에 불과하지만, 운임은 2600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최저거리가 없으면 운임은 600원에 불과했을 것이다.

 

짧게 타는 사람들은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짧은 거리에는 대안적인 단거리 교통수단도 있기에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기본거리제가 없다면 단거리 운임이 매우 낮아져 단거리 승객이 철도로 몰려들 것이다. 그러면 장거리 승객이 표를 구하지 못해 철도는 객단가가 높은 승객을 잃게 되고, 국가적으로도 중장거리에 강점을 갖는 철도 운송수단의 장점을 활용할 수 없게 된다.

 

어쨌든 이 같은 상황에서 핵심적인 것은 이 임률이라는 것이 전국에 똑같이 적용된다는 점이다. 즉 경부선, 호남선, 충북선, 영동선, 경북선 할 것 없이 철도가 운행되는 곳이면 다 똑같이 적용된다. 이 같은 일률적인 임률 적용은, 오래전에 철도가 전국을 관할하던 사실상 유일한 교통수단이던 시절부터 내려온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지역간 차이도 지금보다는 덜 했고, 농촌에도 충분히 사람들이 많이 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크게 달라졌다. 도시화가 극심해진 지금, 지방의 작은 역들은 여객취급을 중단한 경우가 많다. 철도운영기관이 공무원 조직(철도청)에서 기업으로 바뀐 지도 오래되었고, 이제 더 이상 철도가 유일한 교통수단도 아니다. 오히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지역에 따라 교통수단의 양상이 많이 달라지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경부선과 호남선은 고속철도가 운영되지만 아직도 고속선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곳들이 많다. 경쟁교통수단들의 상황도 다양하다. 고속도로의 유무, 고규격 국도의 유무, 지방도의 수준 등 지역마다 상황이 다르다. 여기에 그 도로 시설을 이용하는 버스나 자가용 등의 상황까지 결부시키면 교통망에서 철도의 위상은 지역마다 다양하게 달라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철도운임을 결정하는 방식이 전국적으로 똑같다는 것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지역적인 사정에 맞춘 교통망의 효율적 구성 측면에서 합리적이지 않은 것이다.


 


물론 그동안 이를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이 없던 것은 아니다. 일단 주중, 주말 운임이 다른 것은 오래전부터 시행 중이다. 또한 열차 속도에 따른 운임차별화도 일부 시행되고 있다. KTX의 경우 동일 구간을 달릴 때 정차역이 2개역 이내일 경우 운임이 0.6% 할증된다. 일반열차는 선로최고속도를 기준으로 3단계로 운임이 달라진다. 121km/h이상은 1.1%할증, 90km/h이하는 2.2%할인이 된다. 그 중간은 1%할인이다. 그래서 같은 거리라고 해도 서부 경전선은 경부선에 비해 운임이 2.2% 낮다.    




운영회사에 따른 차이도 있다. 예를 들어 코레일은 천안아산~부산 구간 고속열차 운임이 46,500원이지만, SR은 같은 구간의 운임이 41,600원이다. 이밖에도 표를 미리 구입하면 할인된다든지 발매매체에 따라 할인되는 등 다양한 할인제도가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철도운임제도가 기본적으로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운임 이하로 받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시운임보다 더 받을 수는 없지만, 덜 받는 것은 사업자 자유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는 철도의 운임이 보다 다양해지고 유연해지기를 바란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경쟁교통수단이 존재할 경우이다. 예컨대 동일한 구간에서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로와 버스가 있을 경우, 철도 운임을 할인하여 승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 즉 운임을 경쟁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한편 반대로 생각하면 이런 곳에는 대안 교통수단이 있는 만큼 철도의 운임을 높일 수도 있다. 철도가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철도 대신 버스를 타면 될 것이다. 이와 연계하여 도로와 버스가 부실한 곳에 있는 철도의 운임을 낮춘다면 교통이 불편한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반대급부로 운임할인이라는 혜택을 줄 수 있으므로 공공성의 개선도 가능하다.

 

지역별로 운임체계를 다르게 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교통이란 경제와 떼어놓을 수 없다. 또한 철도 하나만 보지 말고, 전체 교통망을 살펴보아야 한다. 경제가 활성화되려면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어야 한다. 교통이라는 자원도 마찬가지다. 다른 교통망과 제대로 된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면 자원이 불균등하게 배분되면서 낭비나 부족이 생긴다. 이는 경제의 비효율을 유발하여 나라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역별로 교통사정은 모두 다르다. 비슷한 구간에 도로가 있는 경우, 버스가 있는 경우, 자가용 이용 수요가 높은 경우, 철도가 우회하고 도로는 직선인 경우, 그 반대인 경우 모두 상황이 다르다. 이뿐만이 아니다. 같은 버스라고 해도 빠를 수도 있고 느릴 수도 있으며, 중간 정차역이 다를 수 있고, 더 세부적으로는 서비스 수준, 차종마저 다를 수 있다. 버스의 교통사고율도 회사마다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정해진 임률만으로 철도영업을 하는 것은 한계가 크다. 교통이라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교통망 전체를 최적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밀한 운임 조정을 통해 철도 수요를 세부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이 같은 조절은 공공성을 해치는 것도 아니고, 독점사업자의 횡포도 아니다. 오히려 낭비되는 자원을 최소화시켜 국민의 세금부담을 줄임으로서 공공성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철도는 진작부터 독점이나 과점과는 거리가 멀다. 현재 우리나라 철도의 수송분담률은 도로에 비해 크게 처진다. 오히려 이렇게 수송분담률이 낮기 때문에 운신의 폭은 더 넓을 수 있다. 특히 지역적이나 노선에 따른 수송분담률 차이가 크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운임정책을 시행해 교통자원의 균형적 배분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 하나 크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수도권 광역전철의 운임제도를 손보는 것이다. 현재 수도권 통합요금제는 서울시와 인천시, 그리고 경기도 31개 시군에서 일괄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버스의 경우 등급별로 기본요금 차이는 있고, 민자철도는 기본요금에 추가금이 있으며, 서울시와 경기도의 기본요금이 1200원과 1250원으로 다른 점은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수도권 전 지역의 요금제가 상당히 통일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철도 입장에서 문제가 있다. 일단 수송특성이 많이 다른 도시철도와 광역철도가 같은 요금제를 쓴다는 점이다. 도시철도는 단거리 이용객이 많고, 도심지역에서는 낮에도 승객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광역철도는 장거리 이용객이 많고, 낮에는 수요가 급감한다. 도시철도와 광역철도의 역 개수가 역간 거리, 운행시격도 차이가 크다.


그런데 두 철도가 요금을 똑같이 받으면 손해를 보는 회사가 생긴다. 공공성을 고려하여 일단 유지는 된다고 해도, 역시 자원 배분에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수도권 광역철도 급행화에 대해 시민들의 요구가 크지만, 현재 운임체계에서는 급행화를 해도 운임 측면에서는 별 이득이 없으므로 사업자의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는다.


 


권역별로 교통상황이 다른 것도 문제다. 급행열차가 운행되는 1호선과 완행열차만 운행되는 다른 노선이 동일한 운임을 받는 게 맞는지, 1호선과 7호선이 경쟁하고 있는 경인선 구간에서 1호선은 승객을 확보하기 위해 운임을 낮출 필요가 있는 것인지, 전철이 2개나 있는 성남, 고양 방면과 전철이 없는 하남, 김포 방면의 요금제가 동일한 게 합리적인지 등등 여러 가지 의문들이 생겨나고 있다.

 

수요부족으로 파산까지 이르고 있는 수도권 경전철도 운임체계를 이용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있을 텐데, 현재의 수도권 통합요금제로는 이러한 운임정책이 애초에 불가능한 상황이다. 경전철+전철 경로는 환승이 많고 입석인데다 속도까지 느린데, 버스는 속도가 빠르고 착석도 가능하며 심지어 요금도 서비스 수준에 비하면 적절한 상황이다. 버스가 인기를 끌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철이 지역별 상황, 경쟁교통수단의 상황에 따라 운임을 다르게 하고 싶어도 현재 체제에서는 할 수가 없다.

 

수도권 대중교통의 요금조절이 레드오션같은 무한경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교통수단별, 경로별로 그 서비스 수준에 맞는 균형적인 요금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경로가 서비스도 좋고 운임도 좋다면 그쪽으로만 승객이 몰려가버린다. 최소한 어떤 점이 좋으면 대신 어떤 점은 나쁜 식으로 교통수단간 균형을 갖추자는 것이다.

 

가격정책은 수요를 조절하는 좋은 방법인데 경직된 요금제 때문에 정부정책조차 먹히지 않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광역버스 입석이 문제가 되면 동일 구간의 전철 운임을 낮추어 승객을 전철로 유도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녹색교통 활성화를 위해 화석 연료를 쓰는 버스 대신 전기를 쓰는 전철을 더 많이 이용하도록 운임을 조절할 수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역시 현재의 수도권 통합요금제에서는 불가능하다.

 

결국 수도권에서 벌어지는 대중교통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가격정책을 고려할 수 있으나, 현재의 수도권 통합요금제는 매우 경직되어 있어서 이러한 시도를 할 수가 없는 상태다. 따라서 필자는 첫 도입후 13년이 지난 수도권 통합요금제가 앞으로 유연성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개선되어 나가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 공약에 따라 설립되는 수도권 광역교통청의 주요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수도권 광역교통청이 독립된 예산과 인사권을 가진 명실상부한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운수수입을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수도권 통합요금제는 어떤 식으로든 손보고 개선해야 할 것이다.

 

돈이 얽혀있는만큼 승객들 입장에서 운임제도만큼 민감한 것은 또 없다. 또한 일반인은 제대로 파악하기도 힘들 정도로 복잡해진 항공 운임제도에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철도 운임마저 그렇게 복잡해진다면 반감이 생기는 것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철도의 다양한 운임정책은 승객을 괴롭히려는 게 아니라, 철도를 포함한 전체 국가교통망 및 수도권 교통망에 대해서 지역별, 수단별 및 다양한 상황별로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하기 위함이다. 당장은 복잡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정책을 통해 교통수단간의 균형을 찾아나간다면 사회적 이득이 극대화될 수 있다.

 

특히 정부에서 추진 중인 광역알뜰교통카드 등을 이용하여 승객들은 복잡하지 않게 광역철도를 포함한 대중교통을 통합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해주고, 시민들은 볼 수 없는 하위에서 각 수단별, 업체별, 지역별로 균형적으로 운수수입을 배분해나간다면 시민들의 불편 없이 교통자원의 효율적인 배분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통운임은 외국에 비해 저렴하고 단순한 것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경직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승객의 불편을 최소화하면서도 철도의 운임을 유연화하고 다양화하여 수요에 적절히 대응함으로서 최적의 교통망 구성이 가능하다면, 사회적인 비용을 절감하고 교통을 통한 사회적 가치 창출을 하는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철도와 교통이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나아가는 길 중의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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