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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톡톡

                                 봄, 여름, 가을, 겨울



                                                                 법정 스님



# 봄


山에는 요즘 한 창 꽃이 피고 있다

詩에서 지적(指摘) 한 것처럼,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다

그리고 혼자서 진다


진달래가 벌겋게 온 산을 물들이다가 지고 나더니

그 뒤를 이어 이 골짝 저 등성이에서 산벚꽃이

허옇게 무더기 무더기로 피어났다


꽃은 무슨 일로 필까?

이런 엉뚱한 생각을 다 하게 된다

생명의 신비(神秘) 앞에 부질없는 생각일랑 접어 둘 일이다


꽃들은 자신을 남과 비교(比較) 하지 않는다

돌배나무는 돌배나무로 서 있을 뿐,

배나무를 닮으려고 하지 않는다

산 자두도 산 자두로서 만족(滿足) 할 따름

자두의 흉내를 내려 하지 않는다

벼랑 위에 피어있는 진달래 또한 산자락의 진달래를

시샘하거나 부러워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꽃들은 저마다 자기 특성(自己特性)을 지니고

그때 그 자리에서 최선(最善)을 다해 피어나며

자신(自身)을 다른 꽃과 비교(比較) 하지 않는다


남과 비교(比較) 할 때 자칫 열등감(劣等感)과

시기심(猜忌心) 또는 우월감(優越感)이 생긴다

견주지 않고 자신의 특성(特性)대로 제 모습을 지닐 때,

꽃은 그 꽃답게 순수(純粹) 하게 존재(存在) 할 수 있다.




                         # 여름


여름 날 땀을 흘리면서 한참 고갯길을 오르다가

고갯마루에 올라섰을 때, 가까이서 들려오는 솔바람 소리는

오장 육부(五臟六腑)까지 시원하게 해 준다

소나무 아래서 솔바람 소리를 베고 낮잠 한숨 자고 싶어진다

내가 좋아하는 산중(山中)의 풍류(風流)다

제 발로 한 걸음 한 걸음 산길을 걸어 올라가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맑은 복(福)이다


우리에게는 건너다니는 다리 말고도 이웃사이에 놓여진

인연(因緣)의 다리, 관계(關係)의 다리가 있다

눈에 보이는 다리가 무너지면 다시 놓으면 된다

그러나 관계(關係)의 다리가 불편(不便) 하거나 단절(斷切) 되면

인간의 영역(領域)이 그만큼 위축(萎縮) 되고 상처(傷處)를 입는다


관계는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自身)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면서 관계(關係) 또한 우리들을 만들어 간다


"입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생각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는

옛사람의 가르침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 가을


가을은 떠돌이의 계절(季節) 인가?

나뭇잎을 서걱서걱 스치고 지나가는 마른 바람소리를 듣노라면

문득문득 먼 길을 떠나고 싶다

바람이란 그 바탕이 떠돌이라서 그런지

그 소리를 듣기만 해도 함께 떠돌고 싶어진다


우리가 山을 찾는 것은 山이 그렇게 거기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 山에는 젊음이 있어 우리에게 손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 묻지 않은 사람과 때 묻지 않은 자연(自然)이 커다란 조화(調和)를

이루면서 끝없는 생명의 빛을 발(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꽃은 필 때도 아름다워야 하지만,

질 때도 또한 아름다워야 한다

왜냐하면 지는 꽃도 또한 꽃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생(生)의 종말(終末)로 만 생각한다면 막막하다

그러나 죽음을 새로운 생(生)의 시작(始作)으로 볼 줄 안다면

생명(生命)의 질서(秩序)인 죽음 앞에 보다 담담(淡淡) 해질 것이다

다 된 생(生)에 연연(戀戀) 한 죽음은 추(醜) 하게 보여

한 생애(生涯)의 여운(餘韻)이 남지 않는다.



                         # 겨울


나는 겨울 숲을 사랑한다

신록(新綠)이 날마다 새롭게 번지는 초여름 숲도 좋지만,

걸치적거리는 것을 훨훨 벗어버리고 알몸으로 겨울 하늘 아래

우뚝 서 있는 나무들의 당당한 기상(氣像)에는 미칠 수 없다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은 저마다의 특성(特性)을 지니고

있으면서 전체적(全體的)인 조화(調和)를 지니고 있다


사람이 모여사는 사회(社會)도 이런 숲의 질서(秩序)를 배우고

익힌다면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한 그루의 나무를 대할 때 그 앞에서 자기 자신(自己自身)의

모습도 함께 비춰볼 수 있다면 나무로부터 배울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겨울 숲을 어정어정 거닐고 있으면

나무들끼리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빈 가지에서 잎과 꽃을 볼 수 있는 그런 사람만이

그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겉으로 보면

나무들은 겨울잠에 깊이 빠져 있는 것 같지만,

새봄을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눈 속에서도 새 움을 틔우고 있는 걸 보라

이런 나무를 함부로 찍거나 베면 그 자신의 한 부분(部分)이

찍히거나 베어진다는 사실(事實)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나무에도 생명(生命)의 알맹이인 영(靈)이 깃들여 있다

침묵(沈默)은 인간이 자기 자신(自己自身)이 되는 길이다

우리가 무엇이 되기 위해서는

땅속에서 삭는 씨앗의 침묵(沈默)을 배워야 한다

지금 우리가 어떤 종류(種類)의 사람인가는

우리들 자신(自身)이 그렇게 만들어 온 것이다


겨울은 밖으로 헛눈 팔지 말고 안으로 귀 기울이면서

여무는 계절(季節)이 되어야 한다

머지않아 우리들에게 육체(肉體)의 나이가 하나씩 더 보태질 때,

정신(精神)의 나이도 하나씩 보태어질 수 있도록............





  법정 스님 <봄, 여름, 가을, 겨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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