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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

                                       이제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           

                                                                                                                                       모헌 박규헌(1916~2003)

 

  여러 해 전에 나는 <아직도 봄을 기다리며> 라는 어설픈 글을 썼던 기억이 있다.

  그때라고 내가 무슨 봄을 기다려 애탈만큼 염치있는 모든 조건을 구비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때도 이미 칠순을 넘긴 노인이었으니 요즘 자주 쓰이는 말을 빌자면 “종량제 쓰레기 봉지에 담긴 채 대문 앞에서 쓰레기차가 오거나 기달릴 푼수였고 따라서 봄이 온대서 내 젊음이 되살아난다거나 일찍이 품어본적이라곤 한 번도 없었던, 젊은이라면 으레 가져야 된다고 할 말에 궁한 훈장이 자주 차용(借用)하는 그 ‘야망’의 새싹이 뒤늦게 눈틀 기적을 기다려서도 아니었다.



  늙었으므로 봄이 오면 그냥 날씨가 따뜻해서 좋고 요란(搖亂)한 백화(百花)가 싫을 리 없으며 산들거리는 봄바람에 실눈을 감으면 멀리 잊혀진 젊은 날의 추억이 졸음이 오듯 다녀가기도 하는 그런 봄을 난들 싫어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간절한 기다림의 대상이기도 했을 것이다.


  실은 내가 오랜 세월 봄을 기다리며 살아 온 이유의 대부분이 오랜 병석에 누웠을 때 누군가의 봄이 오면 차차 나을 것이란 예언 비슷한 말이 내 병약한 심신에 위안과 기대를 주었고 또 지금은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어버린 아내가 희망도 없는 병석에 누웠을있을 때 나 스스로도 믿지 않는 같은 말을 신비로운 봄의 힘에 우의(寓意)를 담아 열심히 타이러던 그 말이 바로 <아직도 봄을 기다리며>라는 조잡한 내용의 글이었다.

  봄은 원래 찬란한 희망의 계절이라 가을을 위해 씨를 뿌리는 계절이요 햇볕 다사로와 새싹 돋아나고 검은 대지의 조화(造化)가 빚어내는 색채 다양한 꽃들의 경염(競艶), 검은 어미의 자식인데 검은 꽃이 없음은 날로 세상에 피어나는 악(惡)의 검은 꽃만으론 안된다고 설교함일까!

  어찌 됐건 그땐 여러 가지 뜻에서 봄이 오기를 기다렸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목숨을 끌어안고 봄이 오기를 기다리던 아내를 생각할 때 지금 더 엷은 눈물이 안구(眼球)를 덮는다.

  내가 병석에 눕기 전 한때 꽃 가꾸는 취미를 가진 적이 있었다. 2백 개 3백 개의 화분을 매만지면서 지나다보면 어느새 봄은 신록으로 변신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상춘(賞春)이라는 말을 잊은 채 한 계절의 세월을 허송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게 바로 상춘이지 봄맞이의 기쁨이 따로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때는 봄을 기다려야 할만치 내게도 희망이라느니 기대라느니 그런 것도 있었고 죽음이란 말은 아직 배우지 못한 채 젊음을 보냈고 내가 칠순을 넘기고 나서도 자유롭지 못한 보행에다 앓고 눕는 것이 나의 본업쯤일 때도 죽음 같은 건 별로 생각지도 않았었다. 젊었을 때 몇 번이나 죽음 직전까지 다녀왔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대담해졌는지 모를 일이다. 거기다 항시 건강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살아 온 탓으로 사람 사는 것이란 모두 이런 것쯤으로 알았던 착각이 죽음은 아직도 내게서 멀다는 또 다른 착각을 불렀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던 나인데 아내가 죽고 나서 갑자기 늙어짐을 몸과 마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남녀유별의 옛날 부부란 게 다정했으면 얼마나 다정했으랴만 그 중에도 나는 언제나 아내에 대해선 허장성세(虛張聲勢)가 장부된 체면이나 권위인 걸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옛 어른들이 그랬듯이.....) 이제 생각하면 그건 나의 애정의 또 다른 표현이었을 뿐임을 깨달은 지금은 내가 사는 동안에 회한이 있다면, 혹은 죽은 뒤에라도 내게 뉘우침이 있을 양이면 별것도 아닌 권위의식에 우쭐댔던 나의 협량(狹量)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싶다.



  권위를 뽑낼 대상이 없어졌으니 이제 나는 봄 같은 건 기다릴 필요가 없어진 것 같은 엉뚱한 핑계를 대곤 한다. 뽐내는 것과 봄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련만 그게 어느 편에서 생각하면 일종의 추모일 수도 있고 이제 참으로 얼마 남지 않은 세월인데도 이다지 길게 느껴지는 모순은 나의 하찮은 권위를 달래줄 상대가 없어진 고독의 탓으로 돌릴밖에 도리가 없을 것 같다. 어찌 됐건 나는 이제 봄을 기다리는 간절한 소망을 잃어가고 있다.



  봄이 오면 햇볕 다사롭고 꽃피고 새 우는 자연의 반복을 80년 가까이 경험했으니 되풀이 두세 번도 싫증날 일이 적잖은데 그래도 모자랄 것이 무엇이며 언제나 그게 그것 아니던가! 이런 생각이 바로 내게서 봄 기다림을 앗아간 이유인 듯 싶다. 무슨 희망이 있고 기대가 있다거나 하다못해 다정한 사람 만나 이야기 나눌 기회가 없기는 겨울이나 다를 게 없는데 이제 봄을 기다릴 흥미가 있을 턱이 없다. 젊기라도 해서 봄이 오면 특별히 해야 될 일이 있다거나 약속된 기쁨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봄이 어느새 여름으로 바뀌고 나면 나의 남은 세월에서 한 해 4분의 1을 앗아간 꼴이고 보니 봄이 영광일 때는 이미 지난 지 오래다.



  거기다 나의 주변에 봄이 와 주기를 바라는 요건이 모두 없어지면서 봄 기다리는 마음에 이변이 왔는 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의 앞날이 머지 않아 이렇게나마 살아갈 날이 몇 날이 될지 몇 달이 될지 모르는데다 날로 달라져 가는 육체적 정신적 시들어가는 변화에 부딪치면서 봄 기다리는 화사한 꿈을 어떻게 제대로 간직할 수 있겠는가!



  돌이켜보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마을에 정착한 지 10년이 넘는다. 그땐 서울이란 곳이 우리 나라 수도란 것밖에 모르는 나로선 관청에 잡아다 놓은 촌닭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는 아는 사람 하나 없고 갈 곳도 없었으며 설혹 갈 곳이 있었대야 이 현란한 서울의 거리에 나는 한 마리 길 잃어 허둥대는 개미에 불과했다. 이럭저럭 지나는 동안 우리 마을이 불광천변임을 알게 되고 이 불광천 냇물이 우리 마을과 건너편 마을을 갈라놓고 있는데 곳곳에 다리가 놓여 있어서 사람이나 차량의 교통에 지장을 주는 일은 별로 없었다.



  내가 서울에 온 게 늦가을이었으므로 죽은 듯이 한겨울을 지나고 봄이 오자 남들처럼 이른 새벽에 산책을 나다니기도 하고 차차 통이 커져서 다리 건너 마을 앞 8차선 도로의 인도(人道)를 따라 이 애잔한 건강을 위한답시고 하루에도 몇 번씩 만보(蔓步) 걷기를 시도하곤 했었다. 거기서 나와 같은 목적을 가진 노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고 며칠이고 눈에 띄지 않으면 기다려지기도하는 친구가 생기기도 했다.



  매일 새벽 불광천 언덕을 걸으면서도 그 기나긴 언덕을 뒤덮은 얽히고 설킨 가시덤불 같은 게 무슨 나무인가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3월이 다해갈 무렵 잎새도 싹트기 전에 노란 꽃망울들이 터지더니 마침내는 끝없는 냇물의 양편 언덕이 노란빛 천막을 덮어 씌운 듯,푹신한 노란 이불을 깔아 놓은 듯 온통 꽃으로 덮여 있는데 그 꽃이란 것의 하나하나는 호롱불보다도 클 것없는 적은 꽃잎의 모듬이었다. 이른바 그게 남먼저 초봄을 알리고 이내 저버리는 개나리 꽃숲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부터 열 번의 봄을 이 개나리의 꽃숲을 헤맨 셈인데 잠깐 피었다 이내 저버리는 이 단명(短命)한 꽃은 화무십일홍인데 겨울을 빼곤 끊임없이 피어 궁할 줄 모르는 무궁화를 국화(國花)로 정한 조상의 뜻을 짐작할 수 있으나 화들짝 피었다 사라지는 개나리도 어차피 순간의 영화를 즐기고 끝날 세상의 상징으론 밉지 않다. 그러나 이 꽃이 나를 열 번 즐겁게 한 것 이상으로 나를 아쉽게하기에 충분했다.



  그 10년 동안의 3분의 1은 혈압으로 쓰러졌던 아내와 동반이었다. 죽음이 멀지 않은 자의 눈에도 꽃은 기쁨이었던 듯 아내는 꽃잎을 만지느라 자주 불편한 다리를 멈추곤 했다. 그 뒤 얼마지 않아 아내는 다음해 개나리꽃을 다시 보지 못한 채 결국은 갈 곳으로 가버리고 그 뒤론 처음 내가 발견했던 그 개나리 언덕을 또다시 나 혼자 걷기를 4년째가 넘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내가 가버린 뒤의 개나리 언덕은 내겐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했고 언덕에 개나리가 필 무렵이면 아예 그곳에 나타나지 않고 아침 산책의 코스를 바꾼 게 두 해나 된다.. 꽃이 다 진 뒤에 다시 그곳에 나타나면 꽃도 없고 사람도 없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러던 지난해 가을 노인에게 자주 있을 수 있는 낙상(落傷)을 입어 겨울 내내 산책은 그만두고 외출마저 하지 못하다가 요즘 부드러워진 바람에 이끌려 얼마 전에 냇가에 나가보았더니 내가 겪은 10년의 강산이 변하고 있었다.

 

  지하철이 이 천변을 통과하게된다는 듯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나무는 물론 언덕을 온통 뒤덮었던 개나리숲은 땅을 파고 고르는 기계에 의해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고 쇠기둥같은 철재(鐵材)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더러는 쇠기둥을 세우고 철판(鐵板)을 깔아 이 불광천변의 일부가 복개(覆蓋)되고 있었다. 이건 개나리 따위가 피고 지는 것이 아닌 천지개벽이었다.나는 사라져버린 개나리숲에 대한 회고(懷古)의 아픔과 함께 실오리보다도 연약한 심술궂은 안도(安堵)가 싹트는 뜻을 모르지 않는다. (개나리가 눈에 띄지 않으면 꽃잎을 만지는 아내의 추억에서 해방될지도 모르니까.....).



  이렇게해서 개나리꽃 언덕에 개나리가 종적을 감추고 이 길이 연명(延命)의 행로(行路)란 신념으로 눈비 가리지 않던 첫새벽의 소요객들이 지금은 모두 어느 곳으로 산책길을 바꾸었는지 내가 나가지 못하고 그들이 나오지 않으니 이젠 만날 길이 없다. 이대로 다시 산책길이 뚫려서 옛날 모습으로 환원한다치더라도 늙고 병든이의 희망과 기대의 그 길에서 옛날의 그 얼굴을 몇 사람이나 찾아볼 수 있을지 아마 그들과의 재회는 이걸로 끝나기 쉬울 것이다.

 

  그들의 대부분은 여기 개나리 꽃처럼 이미 사라졌기 쉽고 아니면 내가 그들보다 먼저 지는 개나리일지도 모르니 그들과 나와의 관계는 잠시 옷깃 스쳐가는 인연이었을 뿐으로 가슴 어딘가에 아픔만이 남는다.


  지루한 탈선으로 처음 의도했던 생각들을 정리하지 못한 채 속된 수필관의 일례(一例)가 되고 말았다. 80회의 봄을 맞이한다는 일은 참으로 엄청난 일이다. 그건 이 어려운 세상을 약삭빠르게 살아왔다는 증좌이긴 하니 그 중 어느 한 봄도 이렇단 기억을 찾아낼 수 없으니 참으로 하잘 것 없는 였음이 자명하다. 봄이 어디 오늘 왔다가 다음날 가버리는 단명한 계절인가! 달 수로는 적어도 석달을 끈다. 그러니 240달의 봄을 맞고 보낸 셈인데 그 많은 봄들의 어느 한 봄의 기억의 편린이나마 더듬을 수 없으니 이제 내겐 아무 쓸모도 없는 봄을 더 기다리기가 부끄러울 노릇이다.



  불광천변의 개나리꽃도 꽃상여처럼 다시는 되돌아볼 수 없이 되고 내가 생애를 두고 매만져 왔던 화분들은 이젠 내 힘으로 감당할 능력이 없으니 깨지고 빈 화분만 담장 아래 무더기로 쌓이고 있다. 아니 올 사람을 기다림도 이젠 헛되고 이용가치가 없어진 나를 찾는 사람도 이젠 드물며 나와 비슷한 처지의 노인에게서 잠시 외로움을 달래고자 걸려오는 전화를 더러 받는 게 전부다. 이런 부류의 사람에게도 봄은 기다릴 가치가 있는 것일까.



  거기다 들려오는 문 밖 소식은 어떤가?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요, 따라서 한 핏줄이요, 동포요, 언어가 같고 얼굴 생김이 같으며 온후하고 평화를 사랑하며 천성이 개결(介潔)한 백의(白衣)의 순결은 통일에만 적용되지 않는 자랑인가!



  통일의 희망이 믿어지지 않는 나라에 꽃피는 봄이 얼마나 영광된 일일 것이며 만나야될 사람을 끝내 마나지 못하는 봄도 마찬가지다. 늙은 사람에게 기다릴 시간은 이젠 없다. 돈이면 그만이니 그걸 위해서라면 따로 생각하고 망설일 이유란 없겠으니 해서 부끄러운 일이 하나도 없는 세상, 나중엔 아비의 목에 칼을 꽂는 봄이고 보면 햇볕 다사롭고 꽃망울이 이쁘고 향기에 취하고 싶어 봄을 기다릴 유유한한(悠悠閑閑)이 이제 다 살아버린 늙은 나에게도 있다면 그건 기적일 뿐일 게다.



  내가 앓았을때 봄이 오면 나을 것이라던 예언 같은 위로를 믿고 기다렸던 봄이나 아내의 숙환(宿患)의 치유를 위해 애달프게 기다리던 봄은 이젠 내겐 없다. 내가 만일 봄을 기다린다면 이젠 내 마지막을 기다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겠으니 봄도, 믿기 어려운 통일도 그 밖에 일체의 기다림에서의 해탈이 나의 기원일 뿐이다.



  봄 그 자체만은 영원히 찬란한 계절일 테지만 거기 희망을 건다거나 기다린다거나 한다는 것은 지구에 기생하는 각자의 조건에 따르는 것임을 느끼게 된다. <95년 봄>

 

  Essay Club/ http://snuceo.cyworld.com/ 박규환 作

 

 

   * 2013년 3월 수필과 비평(통권 137호) p.p.231-241

 

  1990년 선생은 아내와 사별을 한다. 서울 불광천변의 10년 중 3년을 아내와 함께한 상태였다.

  그런데 선생의 수필은 그 후 더 중후해진다. 노인, 고독, 삶, 죽음 등 빤한 내용들이 작품의 주제가 되는데도 전혀 가볍거나 식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격이 있는 수필로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이제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자연의 질서와 삶의 질서를 하나로 보며 세상의 질서도 거기에 합류하길 바라는 선생의 철학과 인생관이 담긴 내용이다. 피고 지는 꽃들의 섭리, 오고 가는 생명의 질서, 태어나고 죽는 삶의 철학이 담담하면서도 절절하게 그려진다. 지난한 삶을 살아온 자만의 달관한 느낌이며 아쉬움이며 반성이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할까 하는 방향을 제시해 준다. 자포자기가 아니라 순명이다. 아름다운 받아들임과 때를 앎이다. 내가 아는 때, 너희도 알라는 가르침이다. 그런데도 그런 선생의 수필을 읽는 마음에 안타까움이 가득찼다.

  난 편지를 드렸다. <아직도 봄을 기다리며>에서 <이제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로 끝나버리지 않도록 <다시 봄을 기다리며>를 쓰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선생은 당신에게 몇 번의 봄이 남아있건 주어진 삶에 순명코자 하셨다.

 

  수필가(최원현)가 감동한 명수필 ③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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