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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 사람

사람 & 사람, (사)철우회 박삼수 회원 편

사잔작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박삼수 회원

  사람 & 사람,  (사)철우회 박삼수 회원 편

 

 

  Q. 철우회 근무 약 15년(2014. 1. 10 퇴사), 총무국장으로서 철우회의 기반을 닦은 역사의 산 증인이자 일꾼이신데, 지금 철우회를 위해서 일하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조언을 하신다면?

 

  A. 회원이기도 하지만 철우회 약 15년 근무한 것을 보람있게 생각한다. 철도청에서 퇴사하자(1999년 1월)마자 10월부터 철우회에 출근했다.

 

  김재두 회장부터 김정옥 회장, 민척기 회장, 김시원 회장 등 4명의 회장님을 모셨다.

 

  처음에는 승무원 숙사관리사업 업무를 했다. 아마도 철도청 퇴직 직전에 승무원 숙사관리업무를 했기 때문에 철우회에서 나를 부른 것 같다.

  이 때부터(1999년 10월) 정년퇴직 후, 흔히 말하는 제2의 인생이 철우회에서 시작되었다.

 

 

  철우회의 주요사업인 승무원 숙사관리사업이 처음에는 수의계약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국회 국정감사에서 뭐라고 하여, 공개경쟁입찰로 바뀌었다.

  민철식 본부장 후임으로 정구섭 본부장이 왔다. 정구섭 본부장은 이 때까지도 잘 갖춰지지 않았던 철우회의 규정, 숙사관리업무 사업에서 틀을 만들고 경쟁입찰에서 성과를 내었다. 결과적으로 철우회의 재정안정을 다진 장본인이다.

 

  지금도 철우회는 나에게 제2의 삶을 눈 뜨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현직(철도청)에 있을 때에는 만나지도 알지도 못했던 각 분야(전기, 신호, 시설, 운전 등)의 선후배들을 비록 퇴직은 했지만 두루 만날 수 있어서 참 즐거웠다.

 

 

  Q. 인생과 철도는 많이 닮았습니다. 두 갈래의 레일은 하나로 합쳐지지 않지만 늘 함께 하는 부부, 가족, 친구 등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상징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철도와 철우회를 통하여 살아오신 박삼수 국장께서는 인생과 철도에 대해 남다른 감회가 있을텐데 한 말씀 하시죠?

 

  A. 칠 십 평생을 살았지만 인생이 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기차레일과 인생을 연결하여 생각해 본 적 없지만 질문을 들어보니 정말 인생과 철도는 닮은 거 같다. 부부, 친구 등 인간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해보지 않아서 뭐라고 하기가 그렇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본다.

 

 

  Q.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과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절은?

 

  A. 특별히 행복했던 시절은 잘 모르겠다. 아내가 암 투병 할 때 남편으로서 힘이 되어주지 못하여 미안했고, 환자는 환자대로 나는 나대로 같이 힘들었다.

 

  1967년인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 충북 제천 백운면사무소에서 첫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지방직, 국가직 공무원 둘 다 합격했다. 백운면사무소에 첫 발령을 받아 근무(지방직)하던 나는 어느날 총무처로부터 철도청 근무를 통보받았다. 이 때부터 철도와 인연이 되었다.

 

  첫 철도청 근무지는 청량리역 소화물 화물 담당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철도청 생활은 기능직에서부터 여객차장-운수-안전관실-행정으로 이어졌다.

  정년퇴직 하기 전까지 근무했던 곳은 서울지방철도청이었다. 행정분야에서만 23년을 근무한 거 같다. 당시 인사과에 근무했던 심광보 회원이 도움을 주었다.

 

 

  지금 철우회는 정말 많이 좋아졌다.

  1999년에는 정기총회를 용산 가족공원(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했다. 참석회원도 많지 않았지만 재정적으로도 열악했다. 야외에서 도시락으로 식사를 하다보니 어려움이 참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햇볕에 음식이 상하는 문제였다. 2003년까지 그러다가 2004년부터 용산 구민회관으로 장소를 옮겨 정기총회를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행사는 실내라 하기 좋은데 회원들의 식사공간이 없어서 또 문제가 되었다. 구민회관 안에서 식사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근처 식당 몇 곳을 예약했다. 회원들이 식사를 할 만한 공간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분야별로 회원들이 여기 저기 식당에 따로 따로 모여서 식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정기총회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11시 3~40분이 되면 회원들이 총화를 하다말고 식사하러 하나 둘 슬금슬금 식당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정기총회가 엉망이었다.

 

 

  철우회 정기총회는 철우회 행사 중 가장 큰 행사이고 가장 손님이 많이 오는 행사이다 보니 준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다.

 

  2008년부터 세종문화회관에서 제대로 했다.

  무엇보다도 재정이 뒷받침되고 수 백명의 회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에서 정기총회를 하고 식사문제까지 다 해결되니까 정말 행사가 알차고 회원들도 좋아하더라.

 

  힘들었던 일은 제2대 김정옥 회장 때 일이다.

  어느날 김정옥 회장이 직접 운전하여 병원에 갔다가 사망한 사건이 벌어졌다. 사망원인은 백혈구 수치 문제로 2004년 8월쯤으로 기억한다.

  회장님이 갑자기 돌아가시자 정말 철우회가 발칵 뒤집어졌다.

  전례가 없던 일이라 당황 할 수 밖에 없었다. 부랴부랴 민척기 수석부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아서 ‘철우회 葬’으로 葬禮를 치르느라 철우회 임직원들이 정말 고생했다.

  사람이 산다는 것도 별 거 아니지만,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참 무상했다.

 

 

  Q. 사진작가로서 수상경력은 없지만 작품은 취미를 넘어 이미 프로이고 작품입니다. 사진을 하게 된 인연은 무엇이며, 자신에게 그런 재능이 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언제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철도(직장)를 다닌 것은 가족과 생활을 위해서라면, 사진은 무슨 마음으로 하시는지? 또 사진을 찍으면서 포커스(주제)를 어디에 두시는지?

 

  마지막으로 생전에 사진작품 전시회를 가질 계획은 없으신지요?

 

 

  A. ‘박삼수 사진작가’ 아직은 안 어울리는 것 같다. 여전히 철도인이 자연스럽다.

  사진과의 인연은 참 우연이었다. 철우회 근무하면서 (회원 관리) 업무 때문에 카메라를 처음 만져봤다. 그야말로 일 때문에 사진기 조작부터 일일이 배워가며 일했다. 이전에는 한번도 카메라를 만져본 적이 없었다. 일이라 하다보니까 되더라. 지금도 프로는 아니지만 사진편집도 웬만큼은 한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를 잘 모르지만 사진(작품)을 단순히 찍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 안다. 사진을 ‘작품’이라고 하고 ‘작가’라고 하는 것은 사진속에 그 사람의 철학이나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단순히 잘 찍은 사진, 보기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결론은 사진속에 나만의 어떤 세계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Q. 철우회를 관두고 시원한 점도 있고 아쉬운 점도 있을텐데,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요?

 

  A. 사진 찍는 재미가 솔솔하다. 사진동호인들과 산으로 지방으로 곳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백수가 더 바쁘다고 정말 집에 있을 시간이 없다.

 

  더욱이 같은 취미의 사진을 하는 사람들이라 무척 즐겁다.

  그러나 가끔은 카메라 무게를 느낄 때가 있다. 나이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철우회 있을 때에는 업무 때문에 인물 위주로 사진을 찍었다면 지금은 풍경, 사물, 겉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속성을 바인더 안에 포착해보려 몰두하고 있다.

 

  한서대학교 사진반(평생교육원)에서 틈틈이 전문교수한테 배우고 있다. 아직은 사진작가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죽기 전에 작품(사진)전시회는 한번 할 계획이다.

 

  철우회 창립 50년 행사로 회원들의 다양한 재능을 선보이는 자리, 작품을 공모한다니 우선 반갑다.

  한때는 수석수집이 취미였던 적도 있었다. 지금은 오로지 사진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도 취미도 마음도 많이 바뀌는 것 같다.

  철도로 평생 가족을 건사하고 지금도 철도퇴직연금으로 살고 있다.

 

  인생에서 많은 선택의 순간이 있었는데, 철도와의 인연, 소중하게 생각한다. 철우회도 그런 면에서는 매우 각별하고 특히 사진을 알게 해 준 철우회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더더욱 소중히 생각한다.

 

  철우회 창립 50년, 정말 축하하고 앞으로 다 잘 되리라 믿는다. 현재 계시는 분들이 유능하고 잘 이끌어 가리라 믿는다.

 

  난 천주교 신자이다.

  주어진 나의 삶에 대하여 늘 감사하고 살았다. 철우회 일이 그렇게 많아도 스트레스를 거의 안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아직까지는 건강하고 크게 불편한 거 없다.

  감사하고 산다는 것, 쉬운 사람은 쉽고 어려운 사람은 어려운 거 같다.

 

 

 걸어온 길

 

 박삼수

 

 1942년 충북 제천 출생

 철도청 입사 : 1968년 2월

 철도청 퇴사 : 1999년 1월 * 33년 근무

 철우회 근무 : 1999년 10월 1일~2014년 1월 10일까지 (약 15년)

 

 

 에필로그

 

 삶을 사랑하는 남자, 사람들은 박삼수를 참 좋은사람으로 기억한다.

 

 에필로그는 박삼수 회원이 철우회를 퇴직했을 때. 송별연에서 전달한 다음 글귀로 대신한다.

 

그대, 레일위로 지는 노을을 본 적 있는가?

                                              * 부제 박삼수 국장님을 떠나보내며!

 

하고 많은 여정(길)중에서

레일을 만나

레일숲이 되어

레일이 인생이 된 사람들

 

세상살이

반백년 훌쩍 돌고돌아

일생을 레일친구의 친구

외로운 레일맨의 둥지, 쉼터 철우가 용산에 있었다

 

낮은 자세로

큰소리 한번 눈 한번 치뜨지 않고

언제나 호수처럼 고요히

그대의 자리에서 그대의 할 일을

철우가 아름다운 숲이 될 수 있도록

당신을 불살라

풍성하고 단단해진 레일의 맏형, 철우

 

그대, 레일위로 지는 노을을 본 적 있는가?

 

그렇게 묵행 묵언 수행자처럼

철우의 손발이 되어 살아버린 아, 그 세월

소리없는 님의 사랑과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 용산 레일위로 지는 해가 저토록 붉게 애간장을 태우는가?

 

세상살이

시작과 끝이 하나이듯

헤어짐이 있어 사랑이 아름다운 것

레일, 홀로는 외로워

늘 함께 해온 레일(세월)

이별의 부산정거장 어깨동무하고 목 터져라 어울렁 더울렁 같이 한번 노래한 적 없었지만

시간은 야속하게도 우리를 이별하게 하니

 

그대, 레일위로 지는 노을을 본 적 있는가?

 

눈물로 님을 떠나보내 본 적 언제 있었던가?

 

오, 님이여!

오늘 비록 님은 떠나지만

철우는 그대를 떠나보낸 적 없다

철우는 오래도록 님을 기억하겠다, 영원히!

 

걸어갈 수 없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인간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인간의 운명인가

 

님이여

떠나갈 님이시여!

뷰 파인더안에서의 자유!

 

 

님의 존귀한 영혼이여!

지친 님의 몸과 마음, 이제 쉬게 하소서!

 

물안개, 갈대 무성한 강가를 신책하며

님의 목소리로 님의 노래를 부르소서!

 

달콤한 늦잠의 유혹을 뿌리치지 말고

바람과 동행하며 영혼의 자유를 만끽하소서!

 

미운 정 고운 정 서러운 정

들어버린 레일의 情, 철우의 情!

 

비록, 시간이 우리를 갈라놓더라도

 

철우숲에서 님과 함께한 그 세월

 

님이 있어 행복했고, 그간 고마웠소!

 

오늘 님은 떠나지만, 우리는(철우) 그대를 떠나보낸 적 없습니다!

 

 * 인터뷰 :  5월 4일

 

 

 사진 · 글 장태창 기자 02-795-9430 / 010-8943-6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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